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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모던 경성]‘파우스트’는 왜 국내 두번째 오페라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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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한불문화협회,1949년 1월 명동 시공관서 공연…1948년 1월 베르디 ‘춘희’에 이어 두번째

조선일보

1949년1월 '파우스트'가 공연된 명동 시공관. 한동안 국립극장으로 쓰이다 지금은 국립극단 산하 명동예술극장으로 사용된다. 1936년 세워진 극장 '명치좌'가 광복 이후 시공관으로 이름만 바꿔달았다. 1948년 1월 '춘희'. 1949년1월 '파우스트' 1950년 1월 '카르멘' 모두 이곳에서 공연됐다. 한국 오페라의 모태이자 산실이다.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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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첫 전막 오페라는 조선 오페라협회가 이끈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아타)다. 1948년 1월16~20일 명동 시공관(市公館) 에 올랐다. ‘동양의 스키파’로 알려진 테너 이인선이 기획, 제작은 물론 주연(알프레도)을 맡았고, 제자 김자경이 비올레타로 나섰다. 한국 오페라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공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두번째 공연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1949년 1월13~17일 역시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프랑스 오페라 ‘파우스트’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공동대표 박수길, 성규동)이 지난 10월10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전시중인 ‘한국 오페라 첫 15년의 궤적(1948~1962)’에도 ‘파우스트’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프로그램이나 포스터, 사진자료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샤를 구노의 대표작이지만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조선오페라협회가 1950년 1월 ‘춘희’ 후속작으로 올린 비제 ‘카르멘’에 비교해 봐도 덜 대중적이다. 초창기 오페라 인력이나 관중 수준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그런데 왜 ‘파우스트’가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두번째 전막 오페라가 됐을까.

조선일보

한불문화협회는 1949년 1월13~17일 명동 시공관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올렸다. 한해전 베르디 '춘희'에 이어 한국인이 만든 두번째 오페라였다. 고려교향악단 이사 채정근이 조선일보 1949년 1월19일자에 쓴 '파우스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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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문화협회 장길용, 한규동, 이관옥 부부 주도

‘파우스트’를 공연한 단체는 한불문화협회다. 서항석이 연출, 김성태가 지휘를 맡았다. 일본 국립고등음악학원을 나온 한규동이 파우스트, 역시 같은 학교출신인 소프라노 이금봉이 파우스트 애인 마르그리트를 불렀다. 베이스 김형노는 메피스토펠레였다.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였던 테너 안기영에게 성악을 배운 한규동(1912~1996)은 서울대 음대 교수를 지낸 소프라노 이관옥의 남편으로 훗날 숙명여대 음대학장을 지냈다. 한불문화협회를 통해 프랑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적인 제작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불문화협회 이사인 장길용과 한규동, 이관옥 부부가 공연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歌劇 파우스트를 보고’ 上, 조선일보 1949년 1월19일)

◇'오페라 운동사에 길이 남을 주춧돌’

‘파우스트’ 공연은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자 고려교향악단 이사 채정근은 ‘하면 된다는 말을 우리는 이 ‘파우스트’ 공연에서도 보게 되었다. 1947년 7월 이래 계획 연습하여온 보람이 있어 이제 공연을 갖기에 가장 힘든 가극이 우리 손으로 당당히 막을 올리고 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라며 ‘갓 시작된 우리 구극(欧劇)운동사에 길이 남을 주춧돌이 놓여졌다 할 것’(‘歌劇 파우스트를 보고’ 上, 조선일보 1949년 1월19일)이라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오케스트라와 불협화음, 연기 엉망

하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노래와 오케스트라와의 융합은 불행히도 서로의 연합연습이 부족한 탓으로 군데군데 맞지 않고 전체적으로 언제나 감상자에게 즐기기보다도 틀리지나 않았으면 하는 불안을 주며 지휘자의 택트도 지도가 아니라 억지로 타이밍만 하는 감이 있다.’

채정근은 주역들의 노래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무엇보다 ‘출연자들이 연기에 대하여서 일반적으로 무관적(無關的)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가극이 종합예술임을 잊은 소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歌劇 파우스트를 보고’ 下, 조선일보 1949년 1월20일)

‘파우스트’도 ‘춘희’처럼 그해 5월17~21일 시공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연출, 지휘, 출연진은 초연과 동일했던 듯하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1932년 3월22일자. 괴테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전면 특집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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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까지 축사한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1949년 왜 ‘파우스트’를 공연했을까 하는 점과 관련, 이 해가 괴테 탄생 200주년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출세(不出世)의 시성(詩聖) 괴테 탄생 2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립서울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대한학술원 공동주최로 오는 8월28일 오후2시부터 부민관 대강당에서 괴테탄생 200년제를 거행하기로 되었다 하는데…'(‘괴테 탄생 200년제’, 조선일보 1949년 8월22일)

독일 문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대와 학술원까지 나서 당대 최고의 극장인 부민관에서 ‘시낭독, 독창, 실내악 연주, 가극 파우스트와 영화 ‘부르그’ 극장 상연’ 등 다양한 행사를 갖기로 했다는 보도다. 국무총리 이하 관계부처장, 서울시장까지 축사를 했다.

조선일보

괴테는 20세기 초반 조선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독일 작가였다. 일제시대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부분 또는 발췌역이지만 7종이나 소개됐다. 1949년 1월 명동 시공관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두번째 오페라로 '파우스트'가 공연된 것은 이런 대중적 인기를 반영한다.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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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괴테 서거 100주기의 기억

괴테 탄생 200주년 행사라지만 총리,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축사를 할 만큼 호들갑을 떤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괴테는 20세기 들어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 문호이기는 했다. 특히 1932년 괴테 서거 100주년을 맞아 각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특집을 마련해 추모한 기억이 남아있을 때였다. 1932년 3월22일 조선, 동아 양대 일간지는 한 페이지를 털어 괴테 특집을 꾸몄다. 시내 인기 카페 명치제과점에서 김진섭 박용철 이하윤 서항석 조희순 등 해외문학파를 중심으로 ‘괴테의 밤’행사도 열었다. 1949년 ‘파우스트’를 연출한 그 서항석이다. 빅터 축음기 회사 후원으로 괴테 작품을 바탕으로 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오페라 ‘파우스트’ ‘미뇽’을 감상하기도 했다.

괴테 100주기 추모 열풍은 서구 근대를 따라잡기 위한 지식인들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19세기 이래 패자로 군림한 서구의 성공비결을 추격하기 위해 근대의 핵심인 서구 문명을 필사적으로 받아들이려했다. 문학, 음악, 미술을 서구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파우스트’ 번역 열풍

괴테는 독일 어느 작가보다 일찍 이 땅에 소개됐고, 대표작 ‘파우스트’도 일제시대 7편이나 번역소개될 만큼 인기를 누렸다.(박희경,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번역 1-일제 강점기 번역가들과 번역들 79~82쪽). 일부만 번역하거나 자의적으로 발췌한 초역(譯)이었다. ‘파우스트’ 1, 2부 완역은 1961년 김달호 역 정음사 ‘파우스트’에서 시작됐다.

문학청년이나 지식층에게 인기가 높았던 일본 신조사(新潮社) 의 베스트셀러 ‘세계문학전집’ 1차분38권(1927~1930년)에 ‘파우스트’도 포함돼 있어 일역본이 널리 읽혔을 것이다. ‘파우스트’을 완독한 사람은 제한적이겠지만, 적어도 괴테나 책 이름 정도는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떠올릴 수있었다. 이런 대중적 인기를 배경으로 1932년의 괴테 서거 100년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20세기 초반의 열띤 괴테 수용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광복 후 두번째 오페라로 ‘파우스트’가 올라가게 된 배경을 알 수없다. 음악은 다소 낯설었지만, 괴테와 ‘파우스트’는 한국인에게 이미 익숙한 대상이었다.

◇참고자료

박희경,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번역 1-일제 강점기 번역가들과 번역들, 독어교육 제83집 2022, 5

조우호, 근대화 이후 한국의 괴테 수용 연구-20세기 학문적 수용을 중심으로, 코기토 68, 2010,8

김규창, 한국 괴테 수용사 서술의 보고, 독일언어문학 제16집, 20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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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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