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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윤석열 대통령의 휴대전화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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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검사 시절부터 써 온 개인 휴대전화를 여태 사용하고 있다고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후 17일동안 아무 말 없다가 24일이 돼서야 기존 휴대전화 사용을 중지하고 새 휴대전화를 마련했다는 공지를 띄웠다. 실제 일부 인사들은 텔레그램에 등록된 윤 대통령 아이디가 24일 전후로 사라졌다고 한다.

문제는 17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17일 동안 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해커들은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쓰던, 국민의힘 입당 원서에 써 냈다가 노출된 바로 그 전화번호를 해킹하려 혈안이 됐을 지 모른다. 누군가 대통령의 휴대 전화를 원격 조정해 은밀한 회의를 엿들었다면? 대통령의 허술한 안보 의식은 국가를 불안하게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를 아예 끄고 생활했다고 한다. 물론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문재인 정부 참모들은 문 전 대통령이 원래 쓰던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한 걸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도 대통령이 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 적은 물론이고,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취임 2년 반, 임기 절반까지 기존 휴대전화를 활발하게 사용해 왔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에서 인정한 말이다. 휴대전화로 "상 욕"이 들어오든, 응원이 들어오든 조언이 들어오든 대통령은 비화폰이 아닌 오래된 휴대전화에 애착을 갖고 붙들고 대통령직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명태균 논란이 있기 전부터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서 그랬다.

작년 8월 2일 오후 12시 7분, 12시 43분, 12시 57분, 윤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개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검찰 시절부터 써 왔던 옛 전화로 명태균과 통화한 그 번호다. 그 통화 이후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은 보직해임 당하고 '항명수괴죄'로 입건된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인 국방부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 이유는 대체 뭘까.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감청이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국가 안보 문제가 있을 땐 보안폰을 딱 쓰지만, 통상적으로 공무원이나 장·차관과 (통화하거나) 국가 안보나 이런 것이 아닐 땐 제 휴대폰을 쓴다"고 했다. 즉, 개인 휴대전화를 썼다는 건 국가 안보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방증이다. 하지만 개인 휴대전화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란 걸 대통령은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현재 한국과 긴장 상태에 있는 러시아와 '형제 국가'를 표방한다. 최근 러시아는 우즈베키스탄에 전략물자인 드론 부품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걸 검토 중이다. 지난 9월 양국은 교역량을 현재보다 세 배 수준으로 늘릴 것을 합의했다. 국정원장 출신 박지원 의원은 "우즈베키스탄에 국방장관이 계신다면 거긴 구 소련연방 지역이다. 대통령의 통화가 다른나라에 도청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2022년 3월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교민 6000명을 귀국시켰다. 그런 나라다.

"국가 안보 문제가 있을 땐 보안폰을 딱 쓰"는 대통령이 이종섭 장관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던 이유가 '국가 안보 문제'가 아닌 국내 현안과 관련된 문제라는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국가에 위협이 될 도감청의 위험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 된다. 공적 의식, 안보 의식은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당혹스럽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주변 도감청에 대한 우려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미군 기밀 문건 온라인 대량 유출 사태가 있었을 때 공개된 CIA의 일일 정보 업데이트 도감청 문건엔 김성한 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의 우크라이나 전쟁 무기 지원 관련한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충격을 줬다.

과거 문재인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을 비롯해 국민의힘이 아마 정권을 무너뜨릴 기세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이 초래한 아찔한 안보 위기에 대해 다들 점잔을 빼고 있다.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직 시절 뉴욕 자택에 개인 이메일 서버를 만들어놓고 공적인 문서를 주고 받았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이 스캔들은 미국 대선 판을 뒤흔들었고, 클린턴은 3년 넘게 조사를 받았다. 개인 이메일은 6만 개 정도, 문제가 의심되는 조사 대상 이메일만 3만3000개였다. 불기소 권고가 내려진 후에도 문제의 이메일이 발견돼 다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공적 지휘가 없던 클린턴의 '친구'이자 측근인 시드니 블루멘탈이 전직 CIA 간부를 통해 수집한 리비아 내부 첩보를 개인 이메일로 보고받아 논란이 커졌다. 궁지에 몰린 클린턴은 "내겐 많은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정치권에 들어가면 그전에 알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도 오래된 친구들 중의 한 명인데 그는 내가 요청하지 않은 이메일을 보내주곤 했다"고 해명했다.

이 쯤에서 '명태균'이라는 이름 석자가 생각난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명태균과 연락을 하고 끊게 된 과정을 얘기하며 비슷한 설명을 내놓았다. 하여튼 명태균에게 (선거철 여러 사람의 통상의 도움 수준이라곤 했지만) 도움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고, "누구한테 도움을 받으면 말 한마디로라도 인연 딱 못 끊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그런 걸 갖고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경우 공적 지위가 없던 블루멘탈이 보고한 첩보가 외교 정책에 반영됐을 지 모른다는 논란과 함께 블루멘탈 본인이 리비아에서 개인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은 더 커졌다. 특히 해킹에 취약한 개인 메일로 업무를 진행한 사실은 클린턴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았다. 실제 러시아 측이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을 해킹하려 시도했다는 정황도 발견된 바 있다.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는 범죄 의혹과 도감청 의혹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기껏 내놓은 대책이 개인 휴대전화 교체다. 새로 바뀐 개인 휴대 전화는 안전할까? 휴대전화를 바꾼다고 대통령이 갖고 있던 전화번호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기존에 연락하던 사적 라인과 연락을 끊는다는 얘기도 아니다. 사적 안위를 위해 보안 따위는 팽개친 채 무시로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국제전화든 국내전화든 걸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대통령 휴대전화를 다시 안 열어본다는 보장이라도 있나. 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건가.

야당은 대통령의 기존 개인 휴대전화에 명태균 게이트나 채상병 게이트의 증거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증거 인멸'을 의심한다. 보태자면, 새로 바꾼 휴대전화로 대통령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이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프레시안

▲2022년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과 손흥민 선수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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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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