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진작·관계 개선·북한 견제 ‘일타삼피’
중국의 무비자 정책이 시행된 지난 11월 8일 오전 국적기를 타고 온 한국인들이 베이징 서우두공항 3터미널 입국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송광섭 특파원) |
중국 정부가 지난 11월 8일부터 한국인에 대한 ‘일방적 무비자’ 조치를 시행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미리 알지 못했을 만큼 ‘깜짝 발표’였다. 발표 과정도 놀랍다. 11월 1일 오후 9시(이하 현지 시간)가 넘어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린젠 대변인의 정례브리핑 녹취록에 한 줄 담긴 게 전부였다.
녹취록에 따르면 브리핑 후 ‘새로운 비자 면제 국가가 있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린 대변인은 “11월 8일부터 비자 면제 국가 범위를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안도라,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한국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답했다. 이로써 내년 말까지 일반 여권을 소지한 한국인은 비즈니스·관광 등 목적이라면 비자 없이 15일간 체류가 가능해졌다.
1992년 이후 14년 만에 ‘중국 무비자’
이제 중국 입국 시 무비자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위스·호주 등 28개국이 됐다. 비자 면제는 양국 간 ‘상호주의’가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일방적 무비자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내수 진작’이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올 3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예상을 밑돌았다. 올해 목표치인 ‘5% 안팎’ 달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 이에 중국 당국은 지난 9월 말부터 지급준비율과 금리를 낮추고 지방정부 부채 해소 방안과 부동산·자본 시장 안정화 대책 등을 잇따라 내놨다.
이 와중에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무비자 국가에 추가된 것은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 조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중국의 무비자 조치 발표 이후 중국 관광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전보다 고객 수가 배로 늘었다는 여행사도 상당수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풀이하면 이번 조치는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중 관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들어선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이어졌고 지난 10월에는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주중 한국대사에 내정됐다. 대통령 측근을 내정함으로써 중국에 우호적인 시그널을 준 셈이다.
그러자 중국은 무비자 조치를 발표하고 4개월째 공석이던 주한 중국대사에 선임 국장급인 다이빙 주유엔 부대표를 내정했다. 전임인 싱하이밍 전 대사는 내정 당시 부국장급이었다. 관례에 따른 인선이지만 전보다 급이 높아졌다. 11월 15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로 페루 라마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후인 11월 18일 브라질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윤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온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는 이틀 뒤 사설에서 “한·중 협력의 경제적 중요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며 우호적인 평가를 내놨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러시아로 군을 파병하는 북한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대중 강경파 위주로 꾸려지고 있는 ‘트럼프 2기’를 앞두고 북·러 밀착이 강화될 경우 한·미·일 군사 공조를 공고하게 하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한국에 대한 비자 면제는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중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북한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 송광섭 특파원 song.kwangsub@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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