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탄핵사유로 꼽은 대통령실·관저 이전 불법 의혹 감사는 감사원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와 밀접한 업체인 ‘21그램’이 공사 전반을 총괄하고 이 과정에서 숱한 불법 행위 정황이 드러났지만 감사원은 “누가 이 업체를 추천했는지 모른다”는 대통령실 말만 듣고 감사를 종결했다. 사무차장 전결로 이루어진 7번의 감사기간 연장, 임의적인 감사범위 축소 등 절차적 위법 소지도 다분하다. 최 원장은 국정감사 답변에서 “(21그램을) 누가 추천했는지는 감사 키 포인트(핵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감사원은 관저 이전 공사에 들어간 모든 예산사업을 감사했다지만, 관저 내에 증축된 70㎡ 규모 건물이 무슨 돈으로 지어졌는지는 살펴보지도 않았다. 이 건물이 스크린 골프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 경호처가 뒤늦게 “자체 예산을 들여 현대건설과 계약·준공한 경호시설”이라고 해명했다. 감사원이 얼마나 부실감사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반면 감사원은 전임 정부에 대해서는 전방위적으로 표적감사를 진행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때는 감사위원회의 의결 없이 검찰에 수사요청을 하는 동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최근엔 문재인 정부 당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의도적으로 지연됐다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4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나 월성 원전 감사 등 전 정권이나 야권 인사들을 겨냥해서는 먼지 털 듯 감사를 벌인 반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에 대한 감사는 1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다.
그런데도 최 원장과 감사원은 사과와 반성이 없다. 최 원장은 29일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진 사퇴 의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웃으며 답했다. 이날 감사원은 과장급 이상 모든 직원을 소집했다. 기관장 탄핵 추진에 대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의견을 나눌 수는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 회의를 소집한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다. 대통령실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적반하장이다.
내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 원장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최 원장 직무는 정지된다. 그 전에 최 원장은 국민에 사죄하고 자진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그나마 최 원장 개인과 감사원 조직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최재해 감사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야당의 탄핵소추 추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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