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김세완의 주말경제산책] 채권시장아 고맙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간단히 구분한다면 자본시장에는 두 가지의 투자상품이 있다. 주식과 채권이다. 상대적으로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은 안전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주식은 매일 뉴스 끝자락에 그날의 소식이 전해지지만 채권에는 관심도 없다. 채권이 중요한 자산이 아니어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채권은 자본시장의 진정한 능력자이지만 나대지 않을 뿐이다. 2024년 현재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2400조원 수준이지만 채권시장의 시가총액은 2500조원이 넘는다. 채권시장의 자산 규모가 더 큰 것이다.

이렇게 채권시장이 더 큰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 자본시장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은 전체 시가총액의 1% 정도이다. 채권은 대부분 기관투자자라고 하는 보험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채권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기에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채권은 출렁이는 자본시장을 고정시켜 주는 닻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

올해 들어 우리나라 채권시장이 정말 고맙다. 5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열심히 팔고 있지만 반대쪽 채권시장에서는 또 열심히 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보자.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매수-매도)를 보여주고 있다. 순매수가 양(+)의 값이면 사들인 양이 더 많은 것이고 음(-)의 값이면 반대이다.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는 5월 이후 0 아래로 떨어져 계속 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5월에서 10월까지 10조원 넘게 주식을 팔았다.

반면 외국인의 채권 순매수는 3월을 제외하고는 올해 모두 양(+)의 값이고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5월 이후 채권 순매수의 합은 21조원이 넘는다. 주식과 채권시장을 합쳐서 본다면 외국인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11조원 이상 순매수를 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올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상관없이 주식을 파는 이유는 우리나라 주식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코스피는 11월 현재 연초 대비 3% 이상 하락하였다. 게다가 올해 들어 원화는 미국 달러화 대비 8% 이상 하락하였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올 초에 사들였다면 11월 현재 11% 이상 손해를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차분히 생각을 좀 해보자. 2024년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35%, 채권시장에서 1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왜 이렇게 외국인 투자자들을 붙잡으려 할까? 자본시장에도 사대주의가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역할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올해 금융학회에서 발간한 '한국 금융의 미래'에 따르면 2040년까지 노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상대적으로 위험 자산인 장기 채권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령 투자자는 위험한 것을 싫어하고 은퇴로 채권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내 채권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채권을 꾸준히 사주는 투자자는 외국인밖에 없다. 노령화로 정부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 채권을 사주는 투자자가 감소한다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전체 채권의 1% 정도만 보유하고 있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채권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자본시장의 이슈로 등장한 토큰증권(Security Token Offering)의 법제화가 관심을 받는 이유이다. 개인투자자가 채권을 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채권은 큰 액수로만 거래가 되기 때문인데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토큰 채권의 발행과 유통이 허용된다면 다양한 채권들이 소액으로 쉽게 거래되고 개인의 채권시장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외국 개인들도 우리나라 채권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최상급인 AA+ 국가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으면서 3%의 이자를 또박또박 지급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채는 정말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