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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현장의 시각] 글로벌 빅테크 ‘아류’ 넘치는 한국, 특화형 AI에 승부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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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딥엘의 비전은 언어 장벽이 없는 세상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난 28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독일 인공지능(AI) 기업 딥엘(DeepL)의 야렉 쿠틸로보스티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딥엘은 이날 AI 서비스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차세대 초거대언어모델(LLM)에 한국어를 추가하고, 음성 번역 솔루션 ‘딥엘 보이스’ 출시를 발표했다.

2017년 독일에서 설립된 딥엘은 글로벌 AI 시장에서 번역 영역을 선도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서있다. 최근 미국 언어기업협회와 번역 전문 미디어 슬레이터가 전 세계 28개국 127개 언어 서비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AI 서비스로 선정됐다. 딥엘은 82%의 응답률로 구글(46%)과 마이크로소프트(32%)를 크게 앞질렀다.

딥엘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범용 AI 모델 대신, 번역이라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며 품질로 승부하는 ‘특화형 AI’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딥엘의 LLM은 단순히 대규모 데이터를 반복 학습한 것이 아니라 언어 전문가의 튜터링(데이터 맥락과 의미를 교정하며 학습 품질을 높이는 과정)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이를 통해 딥엘 보이스는 발화 속도·억양·방언 등 개개인 음성 특성까지 정밀 인식해 실시간 번역한다. 단순한 일상 번역 도구를 넘어 비즈니스용으로 활용 가능한 정도다. 오픈AI, 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 등과 정면승부 대신 틈새 시장을 파고들어 성공한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대표 테크 기업들의 전략은 딥엘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딥엘이 정밀한 레이저와 같이 한 영역에 집중해 성공을 거둔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망원경으로 먼 곳을 바라볼 뿐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자체 범용 LLM인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생성형 AI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오픈AI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 등 글로벌 빅테크 AI 모델과 차별화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 LLM 규모와 성능에서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에 네이버는 최근 공공기관과 일부 B2B(기업간거래) 산업군에서 ‘주권 데이터’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며 ‘소버린 AI’란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신토불이가 좋다’라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에 가깝다.

카카오도 최근 대화형 AI 서비스 ‘카나나’를 발표하며 초개인화를 강조했지만, 아직 활용도 측면에서 실체가 불분명하다. 사용자 맞춤형 AI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미 유사 컨셉트와 기능을 가진 AI 서비스는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자본력을 갖춘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AI를 강조하지만 기존 서비스들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AI 스타트업인 라이너의 사례를 참고해 볼 만하다. 라이너는 자체 LLM 개발 없이도, 다양한 LLM을 활용해 연구원과 대학원생 같은 특정 사용자에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AI 답변에 대한 정확한 출처 기능이 강점으로 ‘환각(거짓답변)’ 현상을 줄인 덕분에 현재 사용자 수 기준으로 전 세계 10위권 AI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결국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AI’가 아니라 ‘특정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AI’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글로벌 빅테크를 단순히 따라하는 것을 넘어, 딥엘이나 라이너처럼 특화형 AI 모델을 더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최근 미국 의회는 “AI를 과거 ‘핵무기 개발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을 할 정도로 미국은 AI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네이버와 카카오 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들이 단순히 아류에 머무르는 AI가 아니라,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모델로 시장을 개척하길 기대해본다.

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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