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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국산신약 '굴욕' 시대 종료…세계 성과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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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그래픽=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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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37개 의약품 중 9품목이 퇴장하는 등 '잔혹사'를 이어가던 국산신약이 최근 시장 안착에 성공하고 있다. 일부 품목은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 가능성까지 점쳐지며 국내 제약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품목허가현황에 따르면 1997년 7월 5일 SK케미칼 항암제(위암) '선플라주'가 국산 신약 1호로 탄생한 이후 2024년 4월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신약 '자큐보정(성분명 자스타프라잔시트르산염)'까지 국내 제약바이오사가 개발한 신약은 총 37품목이다.

국산신약 4개 중 1개 시장 퇴출 '굴욕'

37개 신약 중 다수 품목은 시장에서 퇴출 됐거나 명목만 유지하는 상황이다.

▲동화약품 항암제 '밀리칸주' ▲CJ제일제당 녹농균예방백신 '슈도박신주' ▲동아에스티 항균제 '시벡스트로' ▲JW제약 발기부전치료제 '제피드정' ▲한미약품 비소세포폐암치료제 '올리타정' 등 5개 품목은 개발사가 자진 취하했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한 결과물인 신약을 스스로 허가 취소한 것이다.

특히 27호 국산신약 올리타는 식약처에 3상 조건부 허가를 받았으나, 글로벌 대형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동종 치료제 '타그리소'가 시장에 출시되며 추가 임상 진행을 멈췄다. 먼저 출시된 타그리소가 시장을 장악하며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던 글로벌 제약사에서 속속 기술을 반납했고, 후발주자로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한 한미약품은 개발을 포기했다. 글로벌 빅파마의 '속도전'에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지거나 조건부 허가 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허가 취소된 품목도 있다.

세계 첫 유전자치료제로 관심을 모았던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는 당초 제출한 서류에서는 주성분을 '연골유래세포'라고 보고했으나 미국 임상 진행 중 해당 성분이 뒤늦게 '신장유래세포'로 확인되며 허가 2년 만인 2019년 식약처에 허가취소를 당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성분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올해 초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생명과학 계열사 코오롱티슈진은 올해 'TG-C'(인보사) 미국 임상 3상의 환자 투약을 마무리하고 추적 관찰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까지 추적 관찰을 마친 후 FDA 품목 허가 신청을 밟아 미국에서 새롭게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제약의 췌장암 치료제 '리아백스주'는 2014년 9월 임상 3상을 조건으로 허가받았지만, 2020년 8월 25일 허가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허가 취소됐다.

품목 허가 갱신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며 사실상 자진 허가 취소된 품목도 있다. 국산신약 1호로 잘 알려진 SK케미칼의 '선플라주'는 승인 10년 만인 2009년부터 생산을 중단했으며, 2022년 허가 품목 갱신에 필요한 안전성 유효성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며 시장에서 퇴출됐다.

1999년 식약청 중앙약심을 통과하며 국내 최초 신약으로 기록된 위암치료제 선플라주는 10년에 가까운 개발기간 동안 약 80억원의 연구비를 쏟아 자체 개발을 마쳤다. 당시 국내 제약산업의 새 계기를 마련했다는 호평을 받았으나 표적항암제를 비롯한 경쟁품목 출현 등 악재가 겹치며 시장성을 잃었다.

SK케미칼은 발기부전약 '엠빅스'에 대해서도 필름형 제제만 남기고 정제는 품목정리 차원에서 시장에서 철수했다.

선플라주처럼 품목허가는 유지하고 있지만 생산 실적과 매출이 신통치 않아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인 품목도 있다. 구주제약의 국산천연물신약 1호 '아피톡신주'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생산실적이 전무했다. 지난해 인스코비의 바이오 자회사 아피메즈가 식약처에 재판매를 위한 골관절염치료제 허가 변경을 신청하며 시장에 돌아왔지만, 2027년까지 연 매출 100억원이 목표로 아직 시장에 안착한 상황은 아니다.

인스코비 측은 적응증 확대를 위해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미국 임상 3상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3상 진행을 위한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미국 상장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외에 대웅제약의 국내 1호 바이오신약 '이지에프외용액', 종근당 항암제 '캄토벨', 동화약품 항균제 '자보란테' 등 3개 품목은 매출이 발생하고 있지만 회사의 기대만큼 매출을 올리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 자보란테의 경우 연 매출이 1억원 이하로, 폐렴 적응증 확대 시도도 지난 2019년 시장성 부족을 이유로 중단됐다. 아이큐비아 등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자보란테의 연 평균 매출액은 2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출시 후 약 10년 간 누적 매출액은 2억원 내외에 그쳤다.

유한양행 위궤양 치료제 '레바넥스'는 세계 최초 P-CAB 계열 약물이지만, 시장 경쟁이 심화되며 현재는 200mg 제품만 생산하고 있다.

최근 4년 출시 품목 시장 안착 성공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에서 밀리는 등 시장성을 입증하지 못하며 씁쓸한 퇴출을 반복하던 국산신약의 분위기가 바뀐 건 지난 2021년부터다.

▲유한양행 폐암치료제 '렉라자' ▲셀트리온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 ▲한미약품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 ▲대웅제약 위식도역류염 치료제 '펙수클루' 등이 2021년 승인됐고, 2022년 ▲SK바이오사이언스 코로나 백신 '스카이코비원' ▲대웅제약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 2024년 ▲온코닉테라퓨틱스 역류성식도질환 P-CAB 치료제 '자큐보' 등 2개의 국산 신약이 나오며 4년에 걸쳐 7개의 국산신약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 코로나 유행이 지나고 생산이 중단된 렉키로나와 스카이코비원을 제외한 5개 품목은 국내 시장에 안착하는 동시에 글로벌 진출을 이어가는 등 고무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펙수클루는 올해 5월 출시 2년이 채 안된 시점에 누적 매출 1020억원을 달성했다. 펙수클루는 지난 2021년 말 국산 신약 34호로 허가받은 P-CAB 제제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다. 유비스트 기준 지난해 국내 위식도역류질환 시장 점유율 2위, 국내 원외처방시장 처방액 성장 1위를 달성했다. 펙수클루 처방액은 출시 첫해인 2022년 하반기 129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535억원으로 확대됐다. 406억원 증가하며 연 성장률은 315%에 달했다.

올해 3분기 매출은 226억원, 3분기 말 기준 연간 누적 매출은 3분기 기준 739억원으로 연 매출 1000억원 목표 달성이 코앞이다. 대웅제약 매출에서 펙수클루가 차지하는 비중도 약 7.8%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2030년까지 펙수클루 단일 품목으로 국내외 매출 1조원을 달성을 목표로 해외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펙수클루는 현재 필리핀을 시작으로 멕시코·칠레·에콰도르 등 중남미 3개국에 진출했다. 중국과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11개국에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아랍에미리트, 인도 등 14개국과 수출계약을 맺었다. 대웅제약은 2027년까지 100개국에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대웅제약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도 지난 7월 출시된 지 1년 만에 누계 원외처방액 100억원을 넘었다. 발매 후 월평균 14%의 성장률을 보였다. 대웅제약은 엔블로가 임상 연구를 통해 포시가 대비 뛰어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등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블로는 지난 9월 에콰도르 보건감시통제규제국(ARCSA)에 품목허가를 획득하며 글로벌 진출 첫 걸음을 뗐다. 대웅제약은 이번 품목허가를 발판 삼아 2025년 상반기 중에 엔블로를 출시하고, 중남미 당뇨병 시장에서 엔블로의 저변을 빠르게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에콰도르 품목허가가 현재 심사 중인 멕시코와 페루, 콜롬비아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엔블로는 현재 멕시코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태국, 페루, 콜롬비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총 12개국에 품목허가 신청을 제출했으며, 8개국(브라질, 멕시코, 러시아/CIS 6개국)과 파트너링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오는 2025년까지 15개국 진출, 2030년까지 30개국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미약품의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미국 제품명 롤베돈)는 지난해 미국(약 800억원)과 한국(약 100억원)에서 총 9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약품은 롤론티스의 미국 판매를 맡은 파트너사 어썰티오 홀딩스에 '추가 로열티'를 연도별로 수취한다. 로열티 비율은 연간 순매출액의 5% 수준으로 알려졌다.

어썰티오에 따르면 롤베돈의 올해 3분기 미국 시장 매출은 1500만달러(약 21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7.5% 증가했다. 롤베돈은 2022년 4분기 미국에 출시된 이후 누적 매출 1억1030만 달러(약 1550억원)를 기록했다. 어썰티오는 최근 롤베돈의 당일 투여 임상 1상을 완료하고 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당일 투여 적응증 확보를 통해 투여 편의성을 높여 점유율 확보를 노린다는 방침이다.

한미약품은 현재 미국 시장 외에도 롤론티스의 중화권, 중동, 동남아 시장 등 글로벌 진출을 위해 다양한 해외 기업과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유한양행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는 국산신약 최초 글로벌 블록버스터 가능성을 보여주며 순항하고 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렉라자 매출은 226억원으로 전년 대비 40.3% 증가했다. 렉라자는 발매 이듬해 매출 161억원으로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2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폐암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을 넓히며 매출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렉라자는 올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미국 존슨앤드존슨(J&J) 이중 특이성 항체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으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이에 따른 기술료 수익으로 유한양행 3분기 실적도 급등했다. 올해 유한양행의 라이선스 수익은 98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만% 가까이 올랐다. 렉라자의 단계별 마일스톤 달성에 따른 기술료 804억원을 수령한 덕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달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을 성인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하도록 권고하며 추가 기술료 수령 가능성도 올랐다. 유럽 허가 후 출시되면 유한양행은 얀센으로부터 기술료 3000만달러(약 417억원)를 받게 된다. 이 경우 렉라자 기술 수출을 통해 얻게 될 수익은 총 2억4000만달러(약 3338억원)까지 늘어난다. 내년 중국, 일본 승인도 유력하다.

얀센은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을 통해 미국에서 연간 50억 달러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받는 렉라자 미국 매출 로열티 비율은 10~12%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일약품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의 P-CAB 제제 의약품 자큐보는 지난 10월 1일 급여등재 이후 한달간 원외처방액은 5억3586만원을 기록했다. 케이캡, 펙수클루 등 시장을 선점한 품목에 비해 첫달 매출은 낮은 편이지만, 후발주자로서 나쁘지 않은 성과라는 평이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자큐보 국내 매출이 올해 약 49억원에 이른 뒤 2025년 75억원, 2026년 274억원, 2027년 372억원 등으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기술이전에 따른 수익도 기대된다. 자큐보는 현재 중국, 인도, 멕시코 및 남미 지역에 기술이전이 이뤄진 상태다. 올해 이 지역 파트너사에서 발생하는 기술이전 관련 수익만 해도 약 47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기술이전 수익이 2027년까지 146억원으로 증가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신규 시장 개척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도 추가 기술이전 계약 체결을 위한 사업개발 활동을 지속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적응증 확대도 추진한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임상을 거쳐 내년 중 위궤양 치료에 대한 승인도 획득할 계획이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 유발 소화성 궤양 예방 요법에 대한 임상 3상도 진행하고 있다.

펙수클루와 엔블로, 롤론티스, 렉라자, 자큐보 등의 시장 안착은 달라진 국내 제약사 위상을 반영한다. 최근 나오는 신약일수록 시장 안착과 글로벌 진출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블록버스터까지 넘보는 모습에서 글로벌 경쟁력도 갖추게 됐다는 평가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레이저티닙은 국내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시장 판매 승인 허가를 획득한 제품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하반기 섹터 지수의 상승에 기여했다"면서 "2024년은 딜의 '건수'가 증가하는 해였다면 2025년은 이에 더불어 개별 업체의 계약 규모 등 가치 또한 상향될 해다. 국내 바이오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수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산 신약을 미국에서 유의미하게 팔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면서 "2025년에도 이러한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제는 기대감이 아닌 실제 눈으로 확인되는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현 기자 bot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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