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기후환경단체 활동가들이 23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 중인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회의장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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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의 최종 합의문 도출을 위한 막판 진통이 장기화되고 있다. 선진국들의 기후재원 마련을 강하게 주장해온 국가들이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는 등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계속해서 폐막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탓에 선진국들에게 더 큰 역사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섬나라와 최빈국 들이 협상 과정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공영방송 BBC는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섬나라들의 모임인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이 이날 바쿠 회의장 내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의에서 빠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사모아, 피지, 몰타 등 카리브해와 태평양, 인도양 등에 있는 도서국 39곳으로 이뤄진 AOSIS는 회견에서 “우리의 요구는 알려져 있으며, 그 요구는 무시당했다”면고 주장했다. BBC는 “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자유낙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섬나라들과 최빈국연합 등 더 이상의 논의를 거부한 나라들을 상대로 유럽연합 대표단이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당사국총회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섬나라들이 이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를 두고 견해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초 지난 22일 폐막 예정이었던 당사국총회에서는 합의 시한을 넘긴 마라톤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공개된 합의문 초안에는 2035년까지 연간 1조3000억달러(약 1827조1500억 원)의 기후 대응 재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 가운데 연 2500억달러(약 351조3750억원)을 선진국이 부담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선진국이 부담하게 될 2500억달러는 2009년 국제사회가 설정한 목표액인 1000억달러(약 140조5500억원)의 2.5배 수준이지만, 기후변화의 위협에 노출된 개발도상국들은 그동안의 책임이 큰 선진국이 더 큰 부담을 져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늘어난 것도 아니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 같은 금액보다 선진국들이 부담할 금액을 늘린 수정안도 나왔지만, 아직까지 협상에 진전은 없는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선진국들이 분담금을 2035년까지 연간 3000억달러(약 421조6500억원)로 올리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이 내용에 당사국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총회에서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 이룬 진전을 되돌리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다. 외신들은 당시 당사국들이 합의한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이라는 내용을 후퇴시키려는 나라들이 있다고 전했다.
BBC는 협상이 끝내 결렬된 가능성도 있다고 전하면서, 이럴 경우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6차 당사국총회 때처럼 이듬해로 논의가 연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내년 6월 독일 본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회의로 합의문 도출이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BBC는 이럴 경우 내년 연말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당사국총회의 논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사국총회에서 최종 합의문이 나오려면 3분의 2 이상 국가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섬나라 등이 회의장을 떠난 것으로 인해, 회의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항공편 예약시간 등으로 인해 회의장을 떠나는 나라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날 오후 8시(현지시간) 본회의장에서 연 회의에서 무크타르 바바예프 COP29 의장은 각 당사국 대표단들에 “국가 간의 분열을 해소”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세계의 시선은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의장을 맡고 있는 무크타르 바바예프 아제르바이잔 생태·천연자원 장관(가운데)이 23일 저녁(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 본회의장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누리집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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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제15차 당사국총회 때처럼 당사국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당사국총회가 폐막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코펜하겐의 제15차 당사국총회는 국제사회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대표적인 기후 협상으로 기록돼 있다.
협상이 폐막일을 넘겨서도 이어지는 것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늘상 있었던 일이지만 협상이 아예 결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총회는 하루를 넘겨 합의문이 나왔고, 2022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총회는 공식 폐막일로부터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이틀이 걸린 바 있다. 전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의 이번 세기말까지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한 역사적 합의가 나온 2015년 프랑스 파리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역시 회의 시한을 하루 넘겨 합의문이 나온 바 있다.
전날인 22일 밤 밤샘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협상장 밖에서는 전 세계의 기후환경단체 활동가 수십명이 합의문 초안 내용에 항의하는 의미로 침묵시위를 벌였다.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합의문 초안에 대해 “완전한 재앙”이자 “사형선고”라고 혹평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 X(엑스)에 “COP29 기후회의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 또 다른 COP가 실패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며 “현재 초안은 완전한 재앙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권력자들은 기후 위기로 인해 삶이 망가졌거나 망가질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형선고에 다시 한번 합의하고 있다”면서 “기후 부채를 갚는데 필요한 지구 북반구 국가들의 자금은 여전히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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