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출구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도섬/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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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불참을 결정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자부해온 ‘한일관계 개선’이 ‘대일 굴욕외교’의 상징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23일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24일 예정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하였다”면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교부가 언급한 ‘제반 사정’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이 있는 극우 인사를 보낸다고 발표한 것을 비롯해 추도식과 추도사 내용 등에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도하는 내용에 대해 한일 외교 당국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오후 1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한 후속 조치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들을 비롯해 전체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열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약속이었지만, 행사와 관련한 한일 외교당국의 협의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태도는 전혀 달랐다.
일본 쪽에서는 이 행사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 추도와는 무관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행사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일본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행사 명칭에 ‘감사’라는 취지의 표현을 넣겠다고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포함된 추도식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해 우여곡절 끝에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 하나즈미 히데요 일본 니가타현 지사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추도식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급기야 22일에는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참배 각료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무관 이상 참석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확답을 미뤄오다가 추도식을 이틀 남기고 결국 극우 인사를 보내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인물을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낸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반발이 확산되었다.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이쿠이나 정무관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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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런 상황을 한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제대로 알고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외교부는 22일 오후로 예정되었던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브리핑을 예정 시각을 불과 5분 앞두고 취소했다. 그만큼 당혹스러웠다는 뜻이다. 기자들의 질의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외교부는 22일 밤 늦게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하여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동 정무관은 일본 정부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이날 밤까지도 한국은 추도식 참석을 고수하면서 이쿠이나 정무관이 추도사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들을 추도하는 내용을 밝히게 하는 쪽으로 협상을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3일 오후 결국 추도식 참석 취소 결정을 밝힌 것은, 추도사와 추도식 식순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를 추모하는 내용을 반영하는 것조차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23일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측에 불참을 통보하였고, 외교 당국 간 상세 논의사항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자 한다”며 자세한 협의 상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추도식에 참석하려던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11명 가운데 9명은 이미 사도섬에 도착해 있는 상태다. 정부는 25일 오전 한국인 유가족들과 함께 사도광산 현장에서 별도의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23일 방송에 출연해 “(추도식까지 시간이 촉박해) 양측이 수용가능한 합의 도달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해서 일단 추도식에는 우리측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면서 “추도식에는 불참하고 우리 유가족분들과 정부 관계기관들이 별도의 추도식을 하고 관련시설과 광장과 박물관 등을 시찰하는 별도 일정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가족이 ‘사도광산 유네스코 유산 등재’ 행사에서 들러리를 서서 모욕을 감수하는 상황이 될 뻔했다는 점에서 일본 쪽에 끌려가는 행사 참석보다는 불참이 나은 결정으로 보인다. 일본이 협상에서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 그대로 공개될 경우,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약속한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추모’마저도 이런 식으로 왜곡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자부해온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협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하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석하는 추모식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성과”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이 약속한 후속조치 가운데 또다른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전시도 ‘강제동원’ 표현이 빠진 데 이어, 추도식마저 한국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일본 정부가 약속했던 매년 추도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하여 일본 정부와 지속 소통해나가고자 한다”고만 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신형철 기자. 도쿄/홍석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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