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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상향…뭐가 바뀌고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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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부담 소비자 전가 우려…적정 예보료율 산정 관건

시장 안정과 은행업 경쟁력 제고 위해 더 미룰 수 없어

경향신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들이 지난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생법안과 관련해 비공개 협상을 한 뒤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김상훈 정책위의장,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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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4년째 5000만원으로 묶인 예금자 보호 한도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1억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늦어도 오는 12월 10일 정기국회까지는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예금자들의 편의가 향상되고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에 따른 은행들의 부담이 금융소비자에 전가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의 예금보험료율(예보료율)을 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1월 25일 법안소위를 열고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논의한다.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리기 위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8개다. 여야는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자 지난 11월 13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등의 민생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극히 높아지고 있어 만에 하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벌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예금자 보호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는 법안을 추진하겠다.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해서라도 입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도 지난 4월 총선에서 예금자 보호 한도 1억원 상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야 정기국회서 법안 통과 합의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는 보호 한도 상향 시기 조정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과 소비자 부담 등을 감안해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는 “여아가 이미 큰 틀에선 합의를 마친 상황이라 금융당국의 의견을 반영해 시기와 그에 따른 방법 등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약 여야가 합의한 대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6개월 후 시행에 들어간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지난 1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도 상향에 대해 “어떻게 구체화하느냐가 남아 있다”며 “대안별 장단점과 실천 방안을 고민해 최적의 방안을 실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사로부터 예금 보험료를 걷어 적립했다가 금융사가 예금 지급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면 해당 금융사를 대신해 고객에게 예금을 지급한다. 2001년 금융사당 5000만원으로 지정된 후 계속 유지돼 경제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주요 국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안정을 위해 예금자 보호 한도를 대부분 높였다.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5000만원), 영국은 8만5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 일본은 1000만엔(약 9000만원)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설정했다. 모두 한국보다 2배가량 많다.

작년 기준 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 보호 한도 비율은 1.2배로, 영국(2.3배)과 일본(2.3배), 미국(3.3배)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다. 이에 따라 예금자들과 정치권에선 보호 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에 이은 새마을금고 뱅크런 위기 등이 잇따르면서 상향 필요성이 재점화됐다.

하지만 한도를 상향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쏠릴 수 있고 은행들의 예보료 인상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논의가 무산됐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금융권 예금자 중 5000만원 이하 예금자 비율은 98%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저축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현금 부자 2%만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예금자들은 ‘98%라는 규모’가 5000만원씩 돈을 쪼개 예치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대부분의 예금자가 보호 한도 내에서 여러 기관에 분산 예치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도 상향이 소비자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을 이용하는 A씨(65)는 “향후 노후 자금 등으로 모아둔 돈을 5000만원 한도에 맞춰 쪼개 넣고 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번거로움도 줄고 한곳에 1억원까지 모아두면 이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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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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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쪼개기 예금 사라질까

실제로 예금 보호 한도를 올렸을 때 자금이 어디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더 많은 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만큼 저축은행 등 금리가 높은 곳으로 돈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가 작년에 진행한 연구 용역에 따르면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 이동이 나타나 저축은행 예금이 16~25%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동 자금은 은행 예금의 1% 수준으로 전체 시장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저축은행 업계 내 과도한 수신 경쟁이 벌어지면 일부 소형사에는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저축은행으로의 자금 이동이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간 금리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예금금리는 약 3.35%로 저축은행(3.55%)과 0.2%포인트 차가 난다. 복수의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공신력이 올라가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현 금리 차가 유지될 경우 외부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한도 상향에 따른 자금 이동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관계자 B씨는 금리 경쟁 가능성에 대해 “저축은행별 규모와 자금 운용 사정에 따라 일괄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현재 당국 규제로 대출 취급을 제한받는 가운데 무작정 예금만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일부 상위 대형 업체들에 한해 자금 이동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 C씨도 “기존에 저축은행을 이용하지 않던 고객들이 한도를 올린다고 해서 갑자기 저축은행을 이용할 고객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1억 이상을 가진 큰손들은 이미 시중은행의 자산 관리를 따로 받고 있어 이들이 저축은행으로 이동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예보료다. 예금자 보호 한도가 올라가면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에서 걷는 예금보험료도 인상이 불가피하다. 예보료율 상한은 잔액 대비 0.5%로 설정돼 있지만, 시행령에서 업종별 한도를 다르게 정한다. 현재 금융사가 예금보험공사에 내는 예보료율은 은행 0.08%, 보험회사 0.15%, 투자매매·중개 0.15%, 저축은행 0.40% 수준이다. 금융위의 연구 용역을 보면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예보료율은 현행 수준 대비 최대 27.3%까지 상향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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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료율 산정안 마련 숙제

이에 따라 금융계에선 “예보료율이 인상되면 결과적으로 금융사가 서비스 수수료를 올리거나 대출 금리를 높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어 보호 한도 조정을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C씨는 “한도 상향에 따른 부담이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으려면 적정 수준의 예보료율 산정이 관건인데, 업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향후 논의에서 난항이 예상된다”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예보료율 산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금융사의 소비자 비용 전가 우려를 기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도 상향 조정은 수신 증가에 따른 이자 이익 증대로 은행의 조달 비용과 대손충당금 등의 위험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어, 보험료 인상이 소비자 비용 전가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단편적 접근일 수 있다”며 “은행권 전반적으로 자본 이동이 생기면 소비자 유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도를 높인 국가 중 미국 은행을 대상으로 분석한 논문을 보면, 당국의 엄정한 자본 및 유동성 규제가 존재할 경우 한도 상향에도 금융사의 위험 감수 경향(고위험 투자)과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은행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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