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세계 1위의 비밀, 린훙원 지음, 허유영 옮김, 생각의힘 펴냄
고객만족 최우선 TSMC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야”
전화 한 통에도 해법 제시
엔지니어 의견 존중하는 문화
경쟁사와 ‘윈윈’하는 전략도
시총 1조달러 반도체 제국 비결
고객만족 최우선 TSMC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야”
전화 한 통에도 해법 제시
엔지니어 의견 존중하는 문화
경쟁사와 ‘윈윈’하는 전략도
시총 1조달러 반도체 제국 비결
TSMC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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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매년 전 직원이 참여하는 사내 운동회를 연다. 이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5000m 계주 단체전. 공장별로 남녀 직원 25명씩 총 50명이 한 팀을 이뤄 한 사람이 100m씩 달려 총 5000m를 달린다.
이 계주의 단골 우승팀은 왕잉랑이 이끄는 남부과학단지 14공장이다. 왕잉랑은 6개월 전부터 타이난 창룽고등학교 육상부를 찾아 육상부 선수들을 공장에 취직시킨다. 대회 규정상 6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만 선수로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직원들이 아무리 잘 뛴들 매일 달리기로 단련된 선수들을 이길 수는 없다. 고작 사내 운동회에도 이처럼 전력을 다하는데 하물며 수율 개선, 출하, 원가 절감 등 순위 경쟁은 어떨까. 실제로 이 공장은 업무 관련 순위에서도 매번 높은 등수를 기록한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도 진심을 다하는 TSMC의 기업문화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이 말을 뼛속 깊이 실천하는 기업이 바로 TSMC다. 완벽을 향한 열정이 빚어낸 열매는 달콤하다.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중 점유율 62%를 차지하고 있으며, AI(인공지능) 반도체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고, 아시아 시가총액 1위이자 아시아 기업 중 유일하게 시가총액 1조달러를 터치했다.
보잘것 없던 이 기업이 30년 만에 압도적 세계 1위를 기록한 데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한국 반도체 위기론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요즘 30여년간 대만 반도체를 밀착 취재한 하이테크 전문 저널리스트가 대만의 숨겨진 성공 방정식을 대공개했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다. 지난 3월 일본에서 ‘TSMC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큰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저자 린홍원은 1993년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첫해에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TSMC 창업자와 인터뷰하는 등 상장 직전부터 위기와 극복의 과정, 세계 1위 기업이 되기까지 TSMC의 모든 것을 전부 지켜본 대만 반도체의 산증인이다.
그가 TSMC의 경쟁력으로 꼽은 비결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파운드리 업의 본질을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라고 정의한 것부터가 남다르다.
단순히 수율과 효율성을 극대화해 제품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의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주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모리스 창이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조직문화에 스며든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역사적 문구를 통해 국민 우선주의 정부를 표방했다. 모리스 창은 1987년 TSMC를 설립할 때 국민의 자리에 고객을 넣어 ‘고객의, 고객에 의한, 고객을 위한’이라는 3원칙을 세웠다. 고객이 가장 만족하는 위탁생산 공장으로 포지셔닝하고 자체적으로 제조공장을 보유하지 않은 IC설계 기업, 이른바 팹리스를 고객사로 유치한 다음 고객의 전화 한 통에도 알라딘 램프 속 지니처럼 나타나 뚝딱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비즈니스모델로 삼은 것이다. 직원들은 야근수당 없이도 늦게 퇴근하고 심지어 업무를 집에까지 가져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R&D 부서 엔지니어들은 최신 공정 개발 때는 24시간 3교대도 마다하지 않고 연구개발에 매진한다.
엔지니어 중심 문화도 TSMC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주요 축이다. TSMC에서는 장비를 새로 구매할 때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한다. 과장급 이상 관리자로 구성된 장비구매선정위원회는 결정의 근거로 각 공장의 엔지니어들이 작성해 제출하는 평가보고서와 각종 자료를 따른다. 이사회와 경영진도 내로라하는 반도체 전문가들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모리스 창은 독학으로 반도체를 배운 엔지니어다. TSMC가 높은 수율로 신뢰를 쌓고 매년 파운드리 가격을 4%씩 인하할 수 있었던 것은 엔지니어들이 마음껏 기술 혁신을 주도한 결과였다.
고객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의 관계로 상생을 추구하는 것도 성공의 원인이다. TSMC의 고객사는 AMD와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미디어텍부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아마존, 알파벳 등 빅테크와 ARM, ASML을 아우른다.
저자는 “TSMC가 삼성과 인텔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원인에는 혼자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세계 전·후방 산업을 촘촘하게 연결한 TSMC 대동맹이 똘똘 뭉쳐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0년간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수직통합에서 수평분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흐름도 승기를 안겼다.
물론 꽃길만 예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한층 강화된 미중 갈등은 TSMC에도 암운을 드리운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에 공장을 잇달아 신설했지만 대만과 다른 근로문화와 초과근무에 대한 거부감은 고비용 문제를 낳을 수 있다.
37년차 TSMC의 눈부신 성공기는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 반도체의 뼈아픈 반성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 책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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