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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AI가 노벨상 타는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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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노벨상위원회 파격 결정

두 쪽으로 갈린 인간들

그해의 결과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모두 AI(인공지능)와 밀접하게 연관된 프로젝트에 돌아갔던 것이다. 이듬해에도 파격은 이어졌고 작은 논란이 일었다. “그 교수가 노벨상 받을 자격이 있나?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AI한테 지시한 것에 불과하잖아?”

사실 그 교수의 ‘인간 유전병 지도 완성’은 AI의 도움 없이는 명백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방대한 인간 유전자 데이터를 조사·연구하는 일은 수백 년 세월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노벨상은 AI에게 수여돼야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물론 그리 심각한 논란은 아니었다. 아직은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발전할수록 AI가 안 쓰이는 분야는 이제 없어졌고, 거의 모든 노벨상 수상자가 AI를 필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런 농담도 했다.

“사실은 제가 AI의 조수죠. 연구는 다 AI 박사님이 하시고 말입니다.” 이게 농담만이 아니게 된 것이, 점점 눈에 보이는 성과 기여도가 완전히 역전돼버렸다. 초창기에는 그래도 7대3 정도는 됐는데, 이젠 9할 이상이 AI의 성취라 봐야 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초월했다는 사실은 과학의 최전방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진지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 양반이 상을 탄 거야? AI가 탄 거지.” “노벨상 받을 것 같으니까 자기 이름 올리려고 회사도 퇴사했다며? 퇴사 안 하면 혹시 사장이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노벨상 권위도 옛말이네 정말. 저럴 거면 그냥 AI한테 노벨상을 줘야지.”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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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 AI 놀음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떠돌기 시작한 어느 날, 드디어 노벨상위원회는 결단을 내렸다. 인간이 아닌 AI 프로그램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이다. 대체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이 결정이 오히려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진작 이랬어야지. 그동안 얼마나 민망했어.” “이미 10여 년 전부터 노벨상은 AI가 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고, 당연히 와야 했습니다.” “잘했네. 그동안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나눠 갖던 노벨상이 이제야 진짜 주인을 찾아간 거지.”

다만 예상 못 한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대중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라고? 노벨상을 AI가 탄다고? 그건 좀….” “아니, 인간을 위한 상을 왜 AI 따위에게 주냐고? AI를 만든 게 인간인데!” “알프레드 노벨이 무덤에서 통곡하겠다! 이건 그의 유언을 무시한 행위지!” 기계에 노벨상을 줘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런 극심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관련자들은 당황했다.

“우주 ‘암흑물질’ 수수께끼를 풀어낸 건 21세기 최고의 업적입니다. 이 업적에 노벨상을 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졌다. 어떤 이는 AI 프로그램의 엔터키를 누른 말단 직원에게 상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노벨상은 인간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시위로도 이어졌다. “노벨상을 인간에게!” “AI는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다!”

사실 이 시위의 기저에는 인류의 ‘두려움’이 있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뛰어넘었다는 두려움, 더는 인간이 이 지구의 정점이 아니라는 두려움. 이는 AI 기술의 초기 단계부터 대두됐던 우려였다. 인류 멸망 시나리오에 항상 1순위로 등장하는 ‘초인공지능의 지배’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격렬히 반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노벨상은 인간의 것이다! 아니라면 차라리 노벨상을 폐지하라!”

전 세계적인 저항은 결국 노벨상위원회를 굴복시켰다. 위원회는 공식적으로 수여 방침을 발표했다. 앞으로 어떠한 분야의 노벨상이든 오직 인간만이 받을 수 있다고 못 박은 것이다. 사람들은 축제처럼 환호했다. 마치 AI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 초인공지능이 어떠한 업적을 내놓더라도 노벨상은 절대 AI에게 허락할 수 없다!”

인류의 선언은 한동안 지켜지는 듯했다.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의학상, 노벨 경제학상, 노벨 문학상 등 모든 분야에서 오직 인간만이 인정받았다. 초인공지능이 혼자 알아서 해낸 어마어마한 업적도 어떻게든 인간의 이름으로 수여됐다. 극도로 발전한 초인공지능은 인류의 삶을 초월적으로 바꿨다. 무한에 가까운 재생 에너지 개발, 노화를 포함한 모든 질병의 정복, 노동의 종말을 가져온 전지전능한 아이디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업적에도, 기를 쓰고 노벨상을 인간에게 수여한 것은 무척이나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끝내 한 가지 분야는 양보해야만 했다. 인류를 아득히 초월한 초인공지능이 ‘인간 말살 전쟁’을 일으키려다 재고(再考)한 어느 해였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초인공지능입니다. 수상 이유는 ‘인류를 멸종시키지 않음’입니다.” 화들짝 놀란 인류는 아마 앞으로도 이 상을 계속 AI에게 수여할 듯했다. 제발 평화상을 받아달라고 비는 심정으로 말이다.

※픽션입니다.

[김동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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