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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현장의 시각] 쌀값 폭락의 주범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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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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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이 지난 20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쌀값 폭락을 방치했고, 물가를 핑계로 농산물 수입을 남발했다”며 정부를 규탄하는 정치집회를 열었다. ‘윤석열은 내리고, 쌀값은 올리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방에서도 도청·시청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쌀값 하락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3년간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 격리 정책을 시행하며 약 1조5000억 원을 투입했다. 시장 격리를 위해 쌀 매입에만 쓴 돈이 이 정도다. 비축 관리 비용을 포함하면 사용한 재정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최근 당정은 쌀값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 및 시장 격리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쌀값 안정 목적 예산 지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쌀 5만 톤을 격리하는 데 약 1000억 원이 소요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1월 15일 기준 산지 쌀 가격은 80㎏이 18만2872원에 거래됐다. 전년 동기 대비 8.2% 하락했다. 농업인 단체가 요구하는 24만원은 물론, 정부가 설정한 목표가격 20만원에도 못 미친다.

‘고물가’ 시대에도 쌀값은 왜 오르지 않을까. 그건 국민이 먹는 양보다 농사를 더 짓기 때문이다. 매년 과잉공급이니 가격이 오를 이유가 없다. 정부가 몇조원을 써가며 대량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해도 겨우 평년 가격 수준을 유지할 뿐이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2024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작년보다 3.2% 감소한 358만5000톤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발표한 ‘쌀 예상생산량’ 365만7000톤보다 7만2000톤이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보다 많다. 정부가 추산한 올해 쌀 초과 생산량은 5만6000톤이다.

해법은 단순하다. 쌀 소비를 늘리거나,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줄고, 탄수화물 대신 단백질·지방을 선호하는 사회에서 쌀 소비를 늘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재배 면적 감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내년 현재 벼 재배면적의 10%를 초과하는 8만㏊를 감축하기 위한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한다. 농가마다 재배면적 감축 목표를 부과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한 농가에는 직불금을 줄일 계획이다. 전략작물 직불금으로 농가가 쌀 대신 콩이나 밀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했으나, 성과가 미미하자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까지 동원한 것이다.

‘쌀값을 올리라’고 해서, 관련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전농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농은 지난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전략작물직불제를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인 양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쌀 재배면적 감축을 강요하고 있다”며 “농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생산량만 줄이려 발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농업의 구조는 기형적으로 쌀 쏠림이 심하다. 쌀 자급률은 100%를 상회하는데, 전체 곡물자급률은 20% 수준에 그친다. 밀과 옥수수의 자급률은 1% 수준이다. 농업에서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작목 전환이 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쌀값이 떨어질 때마다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해 주니, 농업인들은 ‘쌀농사는 망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게다가 벼는 농작물 중 가장 품이 적게 드는 품목이다.

이코노미스트 임팩트가 발표한 ‘2022 세계식량안보지수(GFSI)’에 따르면 한국의 식량안보 순위는 113개국 중 39위에 랭크됐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28위)보다 낮고, 중동의 사막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23위), 카타르(30위)에도 밀린다. 농산물 관세 이슈 등으로 공급망 위기 시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한국의 지수를 낮춘 요인이었다. 실제로 작년 가을 사과와 배 작황이 나빠 가격이 폭등했을 때도 검역과 통상 절차 문제로 외국산 사과·배를 수입하는 게 불가능했다. 국내 농업 보호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과도한 농작물 관세율 구조와 까다로운 수입 절차는 식량안보를 대하는 국제 기준에 역행한다.

대학 시절 운동권 선배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산물 시장 개방의 위험성을 주장했다. 곡물메이저 기업이 처음에는 싸게 공급하다 국내 농업 기반이 무너지면 가격을 올려 나라를 흔드는 무기로 사용할 것이란 주장이었다. 프로파간다였다. 싱가포르와 UAE, 카타르의 식량안보지수는 이 주장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프로파간다에 휘둘린 과잉보호는 한국 농업의 구조적 위기를 초래했다.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보호 정책은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식량안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쌀값 폭락’은 단순한 시장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농업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농업 혁신을 촉구하는 전조 현상으로 봐야 한다.

윤희훈 기자(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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