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세상만사 판단…모든 국가는 경쟁관계라 생각"
"푸틴, 유치하고 비난받아 마땅"…우크라 나토 가입 반대에는 항변
2018년 G7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응시하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중앙) |
(서울·베를린=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김계연 특파원 = 2021년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국제무대에서 여러 번 부딪혔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혹평했다.
20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과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에 따르면 메르켈 전 총리는 오는 26일 출판될 회고록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첫 번째 임기 당시 경험담을 공개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특정 지역의 개발허가를 받을 기회는 단 한 번뿐이고, 자신이 그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경쟁자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것이 트럼프 당선인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트럼프의 세상에서는 모든 국가는 경쟁 관계이고, 한 나라의 성공은 다른 나라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트럼프는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퇴임 전까지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던 메르켈 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과 4년 내내 불편한 관계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017년 취임 이후 백악관 집무실을 처음 방문한 메르켈 전 총리의 악수 요청도 무시할 정도로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백악관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좌측)와 도널드 트럼프(우측) |
회고록에서 메르켈 전 총리는 당시의 느낌도 소개했다.
그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그날 회담을 통해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국제 사회가 트럼프의 협력을 받아 함께 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고 전했다.
회담 중에도 메르켈 전 총리의 발언 중 새로운 시빗거리를 찾으려고 할 때만 귀를 기울였을 뿐 대화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감정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 메르켈 전 총리의 회상이다.
이와 함께 메르켈 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깊은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면서 "푸틴에 대해 상당히 매료된 상태라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트럼프는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지도자들에게 끌린다는 인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메르켈 전 총리는 2017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당선인을 설득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조언을 구한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채 "정말 중요한 사람들과 근본적인 견해차가 있을 때 어떻게 이를 해결하겠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숙이고, 숙이고, 숙여라"라며 "그러나 부러질 정도로 숙이진 말아라"는 조언을 해줬다는 것이 메르켈 전 총리의 전언이다.
메르켈 앞에 개 풀어놓은 푸틴(2007년) |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선적이고 유치하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2007년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지역)와 몰도바, 조지아의 해결되지 않은 분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그의 독선에 불쾌했다"고 말했다.
또 "개를 동원하고 남을 기다리게 하면서 항상 권력놀이에 준비가 된 사람으로 보였다"며 "이 모든 게 유치하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지도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외국 정상과 만남에 지각하기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은 2007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회담 당시 어릴 적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는 메르켈 당시 총리 앞에 래브라도레트리버 종의 애견 '코니'를 풀어놓으며 심리전을 벌였다.
2008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가입에 반대했다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불거진 책임론에 대해서도 항변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에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두 나라의 협정은 2017년까지였다. 러시아 군대와 그런 관계를 맺은 나토 가입 후보국은 없었다. 또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국민 중 소수만 나토 가입을 지지했다"며 "푸틴의 시각을 분석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MAP(나토 회원국 자격 행동계획) 지위를 논의하는 건 중대한 과실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반인 2022년 4월3일 "오늘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반대한 지 14년째 되는 날"이라며 "14년간 러시아에 대한 양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길 바란다"고 비난했다. 당시 메르켈 전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200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결정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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