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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망한 연금 수급권자 배상 총액 늘어나게 판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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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이 열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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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 수급권자가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했을 때 유족이 받을 수 있는 배상 총액이 종전보다 늘어나도록 대법원이 약 30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1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신모씨 유족들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원심 판결을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기 환송했다.

지난 2016년 9월, 신씨는 워크숍에 참석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다 불법 유턴한 택시에 치여 숨졌다. 49세의 나이였다. 신 교수의 부인과 자녀 2명은 사고 택시가 가입한 공제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신 교수가 정년까지 일했을 경우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봉과 위자료, 예상되는 퇴직연금 등을 더해서 유족 측이 받아야 할 금액을 계산했다.

그런데 이때 퇴직연금을 계산하는 방법을 놓고 양측 의견이 갈렸다. 퇴직연금은 유족연금과 중복해서 받을 수 없다. 두 연금 모두 사학연금에서 나오는데, 생활안정 등 취지와 목적이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계산할 때는 이미 받은 유족연금을 빼고 계산해야 한다.

유족연금의 1순위 수급자는 신씨의 부인이었다. 반면 퇴직연금에 대한 손해배상 채권은 신씨의 부인이 3/7, 자녀들이 각각 2/7씩을 상속받았다. 이때 부인이 받은 유족연금을 당사자에게서만 공제해야 하는지, 우선 퇴직연금에서 전체를 공제한 뒤에 유족들이 나눠 가져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유족 측은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주장했다. 퇴직연금을 부인과 자녀 2명이 나눠 가진 뒤, 부인에게서만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족 입장에선 ‘상속 후 공제’ 방식이 공제 범위가 제한되는 만큼 유리하다. 반면 피고 측은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주장했다. 유족연금 총액을 전체 퇴직연금에서 빼고 나서, 남은 금액을 유족 3명이 나눠 가지는 방식이라 배상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1심 법원은 ‘상속 후 공제’ 방식을 택했다. 퇴직연금을 신 교수 부인과 자녀들이 나눠가지고, 유족연금(월 640만원)은 신씨 부인 몫에서만 공제해야 한다고 봤다. 이 계산에 따르면 신씨 부인이 받을 퇴직연금은 0원이 되지만, 자녀들은 각각 약 4600만원의 퇴직연금을 받는다. 위자료와 등과 합하면 신씨 부인은 1억8800만원을, 자녀들은 약 3억3700만원을 받는다.

반면 2심 법원은 ‘공제 후 상속’ 방식을 택했다. 대법원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산시립교향악단 단원 사건에서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취한 판례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사학연금법은 공무원연금법을 준용하므로 이 판례가 신씨 사례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전원합의체 “‘상속 후 공제’시 사회보장법률 취지 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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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동.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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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선고기일을 열고 전원일치 의견으로 ‘상속 후 공제’ 방식이 맞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유족 연금의 공제 순서와 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손해배상 채권과 직무상 유족연금 수급권은 귀속주체가 서로 상이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된다.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된다”고 봤다.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로 공무원연금법과 사학연금법에서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취했던 1994년 대법원 판례가 약 30년만에 변경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전 판례는 유족 연금을 받지 않는 상속인들에 대해서도 연금을 공제하게 돼 상속인들의 손해배상채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됐다”며 “판례를 변경해 망인의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하고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에 맞는 판결을 내렸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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