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사기 피해자 김아무개(73)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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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석 피해자 중에 지난번에 법원에 인분 가지고 오신 분 계시죠.”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514호 법정에서 판사가 물었다. “네” 하고 방청석 맨 뒷좌석에서 김아무개(73)씨가 손을 들었다. 한눈에 봐도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김씨는 지난 3월 법정을 나서는 피고인에게 인분을 뿌렸다. 지난 5월과 8월에는 인분을 가지고 들어오려다 제지를 당해 법정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판사는 김씨에게 “억울하시더라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지켜봐라. 다시는 법정에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있다”고 마지막 경고를 했다. 김씨는 “돈만 받을 수 있으면 안 한다. 법원이 가해자를 왜 보호하냐. (피고인을) 한번만 만나서 내 돈 달라고 얘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항변했다. 김씨는 ‘고령 투자 사기’ 피해자다.
김씨가 지옥을 만난 건 2021년 4월이다. 남편 친구는 “인공지능봇이 365일 24시간 암호화폐 재정거래로 수익을 만들어준다”며 자신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었다’고 했다. 재정거래는 상품을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차익거래를 의미한다. 김씨가 처음 투자한 돈은 700만원이었다. 사무실에 가니 직원이 모니터를 띄워 놓고 에이아이(AI)니, 유에스디티(USDT: 달러 연동 암호화폐)니, 재정거래니 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에 오히려 더 믿음이 굳건해졌다. 4천만원을 더 투자했다. 1년 동안 수익 소식이 없더니, 1700만원을 더 넣어야 그다음 달부터 돈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총 6700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김씨에게 입금된 돈은 3년6개월이 다 되도록 ‘0원’이다.
김씨와 남편은 형편이 좋지 않아 그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작은 분식집도 차려봤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나서는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80대 남편은 경기도 이천에서 노인 일자리를 다닌다. 그 월급도 넣었고 모아뒀던 적금도 뺐다. 김씨가 투자한 6700만원은 현재와 과거의 벌이를 모두 그러모은 그런 돈이었다.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들이 제출한 탄원서 모음.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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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아프면 알아서 병원 가고 나중에 여행도 가고 하려고 벌어놓은 돈이에요.” 하지만 이젠 병원도, 여행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가 다 빠지고 입안이 말라서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 여든살 남편은 심장 수술을 받은 뒤에도 한달 27만원의 벌이를 위해 노인 일자리를 나가야 한다. 그렇게 번 27만원에 노령연금 50여만원을 더한 돈이 노부부가 쓸 수 있는 돈의 전부가 됐다.
김씨를 끌어들인 회사의 대표이사 ㄱ씨와 시스템을 설계한 직원 ㄴ씨는 현재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로봇 트레이딩 재정거래’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ㄱ씨는 “나는 바지사장”이라 하고, ㄴ씨는 “프로그램이 사기 아님을 시연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돈을 되찾을 방법을 몰랐던 김씨는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똥 뿌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 재밌게 놀다 오세요.”
인터뷰 중 벨이 울려 받은 전화기 건너편에선 어리고 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일을 쉬면서 외손주를 돌봐주고 있는 김씨는 사기 피해 사실을 딸에게 말할 수 없어 이날도 ‘소풍을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 나온 터였다. 김씨는 매번 놀러 간다고 핑계를 대고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는 법정으로 향했다. 김씨의 이 소풍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김영희(66)씨의 처지도 비슷하다. 지난 2022년 ‘아는 동생’은 “생전 이런 것 안 해봐서 무섭다”는 김씨를 끈질기게 설득해 70만원을 투자하게 했다. 100% 수익을 준다고 했다. 곧이어 900만원을 더 넣어야 수익이 난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대출에 남의 돈까지 빌려 4천만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김씨는 아도페이 피해자 2106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아도페이를 운영한 아도인터내셔널은 리퍼브(전시되거나 반품된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것) 유통업으로 고수익을 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은 뒤 자체 개발 가상자산에 투자하도록 해 피해자들로부터 4천억원을 가로챘다. 이 회사 대표는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용역회사를 통해 김 공장에 다니며 빌린 돈을 조금씩 갚고 있다. 빚은 2천만원으로 줄었지만, 고통은 줄지 않았다. 남편은 “멍청하게 그런 데 투자했다”며 김씨를 거칠게 대했다. 그가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법원밖에 남지 않았다. 김씨는 한달에 한번 법원에 와서 “피고인을 엄벌해 달라”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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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사기 범죄(2018년~2022년) 피해자 중 61살 이상 비중은 2018년 11%에서 2022년 15.2%로 늘었다. 특히 김씨와 같이 다단계, 유사수신 방식 범죄의 노인 피해자 숫자가 크게 늘었다. 서울회생법원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개인파산자 중 60대 이상은 49.6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주식과 가상자산 등 투자 실패를 파산 이유로 꼽은 비중이 11.8%로 2021년(2.07%) 대비 5배 이상 급증했다. 실제 아도인터내셔널 고소에 참여한 320명의 연령대를 분석해봤더니 △80대 0.3% △70대 11.87% △60대 43.75% △50대 29.68% △40대 8.75% △30대 4.37% △20대 1.25%로 60대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노인 피해자 급증에 따른 사법복지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정보 소외와 가족 파편화로, 노인들이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기 범죄 등에 내몰리고 있다. 투자 소식이나 사기 피해 소식을 자식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최소한 범죄 발생 이후에라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피해를 접수받고 도움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육 등을 통해 범죄 예방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며 “조직 사기범죄는 재범률이 높은 만큼 신상공개 등의 제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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