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영웅의 여정' 중 슈베르트 '도플갱어'를 열창하는 사무엘 윤. 예술의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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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회를 한 편의 음악극으로 빚어내는 힘을 여느 성악가가 다 겸비한 것은 아니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52)은 원숙하고 호소력 짙은 자신의 음악성뿐 아니라 성악·기악·무용·영상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을 선보이겠다는 의도를 무대로 입증했다.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방랑자, 영웅의 여정' 무대에 환호가 쏟아진 이유다.
사무엘 윤은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으로 발탁되며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불린 세계적 성악가다. 독일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고, 쾰른 오페라 극장 종신가수로 활약하다 2022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국내서도 활동 중이다. 이번 무대는 올해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보컬 마스터 시리즈'로, 소프라노 홍혜경·베이스 연광철에 이어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무대는 여느 오페라 전막 못지않게 다양한 요소가 동원됐다.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박귀섭(활동명 BAKi)이 연출과 영상을 맡았고, 피아니스트 박종화와 현악 4중주단 아벨콰르텟이 다채로운 음색을 연주했다. 3명의 무용수가 고독한 인간의 슬픔, 혼돈, 절망, 구원 등을 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휴식 시간 없이 이어진 90분은 사무엘 윤이 연기한 방랑자의 음울하고 불길한 하루를 암시했다. 깜깜한 밤 허공에 수십 개의 의자가 흩어져 매달려 있고, 방랑자는 작은 불빛에 의지할 뿐 두 다리를 쉴 곳이 없다. 슈베르트 '방랑자' 중 '나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다'라는 외침이 더 애처롭게 들린다.
곧이어 오래된 사진을 바라보는 방랑자 앞에 젊은 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무엘 윤이 슈만의 '꿈속에서 나는 울었네'를 부르는 동안 남녀 무용수는 사랑하고 다투던 과거의 모습을 연기한다. 사무엘 윤도 이들 사이를 헤매듯 액자를 끌어안거나 내동댕이치며, 연인을 잃어버린 이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표현했다.
슈베르트 '도플갱어'를 부를 땐 두 대의 거울을 통해 마치 그 안에 갇힌 듯한 남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볼프 '화염의 기사'나 바그너 '라인의 황금' 중 '내가 이제 자유롭다고?'에선 광기 어린 웃음과 흐느낌이 폭발했다. 5중주로 편곡된 말러 교향곡 5번 중 4악장과 슈트라우스의 '내일' 중 4번은 다시 비춰오는 한 줄기 빛 속 구원받는 남자의 모습을 그려냈다.
20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에는 보통 출연진만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대작이 오르는데, 사무엘 윤은 사실상 '1인 오페라'임에도 빈틈없이 무대를 장악했다. 우리나라 관객에겐 외국어 가사가 가곡·오페라의 진입장벽이 될 때도 있지만, 이번 공연은 무용, 영상, 조명 등이 감정선을 직관적으로 보여줘 몰입도를 높였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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