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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담즙 쌓여 간 파괴되는 질환 ‘피픽’, 신약 적용 땐 소아 간 이식 부담 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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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재성 서울대병원 교수·라이너 간쇼우 독일 본대학병원 교수



가려움증 대표 증상, 성장 등 저해

8월 신약 ‘빌베이’ 국내 도입 허가

현재 건강보험 급여 범위 논의 중





중앙일보

고재성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왼쪽)와 라이너 간쇼우 독일 본대학병원 소아소화기내과 교수는 적기에 피픽 환자를 발견해 치료하려면 질환에 대해 알리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미연 객원기자, [출처: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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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24시간 몸이 가려운 질환’. 희귀 질환 피픽(PFIC·진행성 가족성 간내담즙정체증)을 표현하는 말이다. 피픽은 유전자 변이로 태어날 때부터 간에서 담즙이 잘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한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간 이식 외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상황. 다행히 지난 8월 경구용 신약 빌베이(성분명 오데빅시바트) 도입이 허가돼 환자의 선택권이 확대될 전망이다. 신약의 국내 도입을 앞두고 소아 희귀 질환 분야 전문가인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고재성 교수와 독일 본대학병원 소아소화기내과 라이너 간쇼우 교수에게 피픽의 치료법과 신약의 기대 효과를 들어봤다.

Q : 이름조차 생소한데 정확히 어떤 질환인가.

A : 라이너 간쇼우 교수(이하 간쇼우): 담즙 축적으로 간이 파괴되는 병이다. 담즙을 간 밖으로 배출시켜주는 수송체 자체에 결함이 생겨 수개월, 수년간 담즙이 간 내에 정체되고 문제를 일으킨다.



A : 고재성 교수(이하 고재성): 이 경우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가 생기고 자칫하면 이른 나이에 간 이식을 받아야 할 수 있다. 피픽의 유형은 알려진 것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데 유형별로 발현 형태와 예후가 다를 수 있다. 국내에서는 간암 발생 위험이 커 사망률 또한 높아질 수 있는 2형이 많다.

Q : 질환 발병을 의심할만한 증상은 뭔가.

A : 고재성: 대표적인 게 가려움증이다. 축적된 담즙 일부가 혈액으로 흡수, 담즙산의 농도가 높아져 가려움증이 유발된다. 그 정도가 심해 살갗이 다 까져 피가 날 때까지 벅벅 긁기도 한다. 아이가 가려움증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하니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학습 능력도 떨어진다. 담즙 정체로 황달도 발생하는데 태어나자마자 문제를 바로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피픽으로 인한 황달을 신생아 황달로 오인할 수 있어서다. 보통 생후 한 달에서 6개월 사이에 문제를 알아채고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진단을 받게 된다.

Q : 오랜 기간 간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A : 간쇼우: 그동안 다양한 약물을 피픽 치료에 시도해 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환아에게 간 이식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몸무게가 3~4㎏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작을 땐 수술 후 봉합도 어려워 의료용 패치를 붙이고 경과를 관찰한 뒤 조치를 취해야 한다.

A : 고재성: 게다가 2형 피픽의 경우 간 이식 후 환자의 10%에서 담즙 정체가 재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식할 간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뇌사 기증자가 많지 않아 보통 부모가 간을 기증하려 하는데 이마저도 엄마·아빠의 간이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올해 8월 국내에서 경구용 신약 사용이 허가돼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Q : 어떤 약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A : 간쇼우: 이번에 한국에 도입되는 오데빅시바트는 간 내에 담즙이 쌓이지 않고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물로, 피픽 치료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만약 어릴 때부터 복용을 시작하고 환자가 약에 반응을 잘한다면 평생 간 이식을 받지 않고 살 수도 있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2021년부터 이 약을 사용했는데, 경험상 치료 효과도 뛰어나다. 실제 환자 중 혈중 담즙산 수치가 정상 범위인 10 안팎을 넘어 700까지 오른 5세 남아가 있었다. 증상이 심해 종일 잠을 자지 못하고 몸을 긁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데빅시바트 치료 4주 만에 가려움증이 거의 사라지고 혈중 담즙산 수치도 정상 범위가 됐다. 증상이 해소되면서 그간 발달이 정체됐던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Q : 약이 도입된다고 해도 보호자 입장에선 치료비가 걱정이다.

A : 고재성: 현재 약의 건강보험 급여 범위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아마 국내에서는 피픽의 세부 유형과 치료 반응에 따라 약의 급여 유지 기간에 제한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의 경우 피픽 진단 여부 자체나 유형과 관계없이 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신약을 쓸 수 있게 돼 있다. 가능하면 한국에서도 모든 피픽 환자가 신약의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A : 간쇼우: 실제 독일에서는 피픽 같은 희귀 질환일 때 신약을 사용하고 급여를 적용받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설령 최종 진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보험기관에 연락해 증상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상의하면 대부분 쓸 수 있게 해준다. 정기적으로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하면 된다.

Q : 환자와 보호자 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 고재성: 그동안 피픽 환자들은 간 이식 수술의 부담이 컸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효과적인 신약이 도입되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A : 간쇼우: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제때 적절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피픽 환자가 많다.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질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보통 환자가 가려움증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알레르기를 먼저 떠올린다. 간 문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기억하고 혈액 내 담즙산 농도도 체크해 주길 바란다. 아이의 성장이 지연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수 기자 ha.ji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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