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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에버라드 칼럼] 통일하려면 북한 하급 간부들 마음을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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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남북한의 통일 정책이 크게 달라졌다. 북한은 더 이상 한국이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닌 주적이라 선언하고 통일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지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연설에서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여론조사에 따르면 ‘상황이 개선된다면 통일을 지지하겠다’는 여론이 2007년 71%에서 2023년 45%로 떨어졌다. 통일에 대한 지지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역대 한국 정부는 계속해서 통일 정책을 추진해왔다. 북한의 통일 정책 폐기는 전략적 전환을 의미한다. 북한은 경제·문화면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한국이 북한 정권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지도층과 주민 사이에서 큰 역할

남한 사정 알고 정보 접근도 가능

통일에 긍정적 믿음 갖게 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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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연설에서 강조한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강력히 열망하도록 배려하고 변화시키는 과제”는 북한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 연설 이후 북한이 철저하게 침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정책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북한 주민들’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냐가 그것이다. 북한 최고 엘리트층인지 일반 주민인지 아니면 그 중간에 위치한 계층인지 말이다.

북한 최고 엘리트층이 만족하고 동시에 한국 국민이 만족하는 통일 방안을 제안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통일 방식은 북한이 이미 ‘흡수 통일’이라고 일축한 방법으로 북한 최고 엘리트층의 권력·지위·부를 빼앗는 방식이다.

독일 통일 당시 북한 정권은 간부를 대상으로 공원에서 전전하는 궁핍한 삶을 사는 동독 공직자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면 겪게 될 미래의 모습이라고 교육했다. 만약 통일된 한반도에서 북한 지도층이 일정한 권력을 보장받는다면 한국 국민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권력투쟁에만 능하고 현대적 통치 기술은 전무하며 더군다나 인권유린 범죄에 가담했던 자들이 자신들을 통치하는 상황을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독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통일에 정답은 없다. 통일로 인해 동독 인사들이 겪어야 했던 결과로 아직도 옛 동독 측에는 앙금이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남예멘과 북예멘의 통일 후 남아있던 전 남예멘 인사의 원한은 결국 예멘의 분단으로 이어졌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평화 통일의 장점을 설득시키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통일이 빈곤 탈출과 삶의 풍요를 가져다줄 거라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 주민에게 이를 알리는 일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에게 외부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한 방어막을 세웠다. 그런데 지도층과 주민 사이에서 전략적 결정은 내리지 않지만, 북한 지도부의 명령을 실행하는 백만 명의 하급 간부 세력이 있다. 이들은 평양에 주거하며 대부분의 북한 주민과는 달리 정보와 USB를 사용할 수 있는 기기에 접근할 수 있다.

김정은의 통일 정책 폐기에 실망했을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평화 통일의 장점을 설득시킬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다. 북한 정권 지도부가 “충성도가 약화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한탄하는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통일된 한반도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평화 통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통일을 원하게 되려면 통일된 한반도에서 더 높은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존경과 특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통일로 가는 길목에 놓인 걸림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에서 북한 인권 유린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지만, 앞서 말한 북한 하급 간부층은 인권 유린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이 인권을 강조하면 할수록 통일된 한국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법의 심판이라고 두려워할 것이다.

이들이 통일을 지지하려면 처벌 면제가 보장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와 외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위해 싸워 온 많은 이들을 분개하게 할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고, 하급 간부층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한국 측의 입장을 잘 반영한 것이어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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