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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격노’의 결과물 [인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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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서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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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유학자 여조겸(1137~1181)은 성품이 거칠고 사나웠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참지 못하고 밥상을 뒤집어엎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논어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다.

“자신을 탓하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탓하기는 가볍게 하면 원망받을 일이 적다.”

여조겸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때부터 남 탓 하기보다는 자신을 탓하며, 거칠고 사나운 성격을 억누르고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려고 애썼다. 주희의 문집 <회암집>(晦庵集)의 이야기다.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남의 잘못은 곧잘 지적한다. 반대로 자기 잘못을 쉽게 용서하는 사람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잘못이 없고 모든 건 남 탓이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게 당연하다.

‘묻지마 범죄’라는 우발적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분노조절장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이 분노의 화살을 불특정 다수에게 돌림으로써 이런 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는 일부 범죄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현대인은 극심한 경쟁에서 자칫하면 낙오하거나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일에도 걸핏하면 화를 내고 싸움을 벌인다. 그 바람에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층간 소음이나 주차 문제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도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불쑥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운 경우는 드물지 않다. 사회적 문제이니 구조적 해결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솟구치는 분노를 번번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국정운영에 변화가 없다면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결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듭되는 ‘격노’도 그중 하나다. 가장이 밥상을 뒤엎으며 화를 내도, 가족들은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다.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벌벌 떠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에는 긴장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피로와 짜증을 유발할 뿐이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분노를 일으킨다는데, 대통령의 격노는 달라진 정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일보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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