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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朝鮮칼럼] 대통령 지지율은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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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앞자리가 2나 1이라고 법적 권한이 줄어들진 않아

하지만 권위가 훼손된다… 그러면 令이 서지 않아

게다가 야당은 역풍 걱정도 사라져

계엄령·독도 일본 준다 황당 음모론 민주당은 별 역공도 받지 않아

이 모든 것이 지지율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지지율에 민감하다. “늘 바뀌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같은 소리는 대부분 그냥 하는 소리다. “지지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가 없더라도 꼭 필요한 일을 하며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 같은 말도 비슷하다. 지지율이 괜찮을 때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제 무덤 파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지율보다 가치, 역사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뭐가 중요한가? 현직 대통령이 또 선거에 나갈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는 헌법과 법률에 나와 있으니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딱딱 할 일을 하고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받으며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개발연대의 성취를 그리워하는 노년층에서 주로 나오는 소리다. 윤 대통령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의 평가’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같은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지율은 중요하다.

물론 성숙한 민주국가에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봐도 지도자들이 아주 잘나갈 때 50%대를 찍고 40%대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 조지 W 부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의 임기 중 평균 지지율은 모두 40%대다.

실은 이보다 더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든 내각제의 총리든 한 진영, 큰 정당의 지도자라서 일종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업고 있는 데다가 뭔가를 잘못해 국민에게 회초리를 맞으면 정책 방향을 바꾸거나 낮은 자세를 취해서 교정하기 때문에 지지율의 하방이 지켜진다. 그래서 통상 30%대는 그리 좋지는 않은 숫자고 앞자리가 2나 1로 찍히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이다. 고정 지지층도 돌아섰고, 지지율 하락 원인에 대한 대책도 시행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니까.

지지율 앞자리 숫자가 2나 1이라고 해서 법적 권한이 줄어들진 않는다. 하지만 권위가 훼손된다. 권위가 훼손되면 영(令)이 서지 않는다. 대통령의 가장 큰 권력 중 하나인 의제 설정 능력, 즉 말의 힘이 사라진다. 말의 힘이 사라지면 메신저 거부 현상이 나타난다. 옳은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꼽으며 버티거나 조롱하고 저항한다. 권위와 영을 세우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 반감을 자극해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홍보를 강화해도 메신저 거부 현상으로 역효과가 나타난다. 당근을 써도, 채찍을 써도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해진다. 역사의 평가를 기다릴 무슨 일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상당히 낮은 지지율이 지속될 때 나타나는 다른 효과도 있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가 지금까지 이만큼이나 버틸 수 있었던 데는 반사이익의 몫이 컸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나 김의겸 전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허위 주장, 김건희 여사에 대한 날조된 추문과 악의적 공격들이 도를 넘을 때 보수 지지층은 마음을 다잡았고 중도층도 “그래도 지난 대선 결과가 그렇게 나와서 다행”이라고 되새겼다. 하지만 그 야당 복도 사라지고 있다. 반면 야당 입장에선 대통령 인기가 낮으니 뭘 해도 역풍 걱정할 일이 없다. 삼진 걱정 없이 홈런스윙 하는 식이다. 예컨대 “충암파 장군들이 계엄령을 준비한다” “윤석열 정권이 독도를 일본에 넘기려 한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괴담은 빈축을 샀고 대통령과 여당에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별 역공을 받지 않았고 여권의 반사이익도 없었다.

계엄령 저작권자 김민석 의원의 형인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국회의원회관에서 ‘탄핵의 밤’ 행사를 주도하며 “탄핵 정국이 만들어진 것은 중요한 성과”라며 “오늘 국회에서 우리는 탄핵을 외칠 수 있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탄핵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극히 미약하다. 현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남미식으로 탄핵이 일상화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앞 대로변에도 동네 지하철역 앞에도 걸려 있는 탄핵 어쩌고 하는 현수막은 익숙한 풍경이 됐고 동네 호프집에 앉아 있어도 탄핵이라는 단어가 귀에 걸린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뉴스는 ‘오늘도 여전히 열대야’를 읊어대는 일기예보처럼 짜증 나지만 익숙한 소식이다.

이 모든 것이 지지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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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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