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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르포 대한민국] 그렇게 지었는데도 대도시 중 최저… 서울 아파트값이 늘 뜨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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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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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으며 내수는 회복되지 않고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사업을 접고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인 98만명 규모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해야 하지만 한국은행은 망설이고 있다. 금리 인하로 인한 가계 부채 증가, 더 정확히는 주택 가격 상승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주택 가격 상승은 철저하게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서울에서도 한강을 접하고 있는 일부 지역과 신축 아파트 가격만 상승했다.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의 나머지 지역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한강 조망이라는 미래 가치, 그리고 신축 아파트가 제공하는 삶의 질 향상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은 아파트 자체가 부족하고, 기존 아파트들은 낡아가고 있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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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서울의 주택 가격 상승은 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서울은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 2023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서울은 59.8%에 불과하다. 수요는 가장 많지만 공급이 가장 부족한 곳이 서울인 것이다. 반대로 다세대·연립주택 비율은 30.1%로 가장 높다. 서울의 1인당 지역 총소득은 6377만원으로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지만 수요자가 선호하는 아파트는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언제나 불안하다.

아파트는 1970년대 이래 지식인들로부터 천박한 욕망의 대상이자 경관을 파괴하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간주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자체 공간에서 스스로 해결해왔다. 우리의 삶은 집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주차장, 적당한 녹지, 학교와 어린이집 등 많은 공간과 시설을 필요로 한다. 아파트는 이런 요소들을 입주자의 부담으로 확보한 공간에서 해결하고 있다. 대형 아파트 단지의 경우 학교용지까지 제공하고 있다. 정작 이런 일을 해야 할 지자체들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에 아파트 입주민들은 공공이 제공해야 하는 공간을 공급하는 역할까지 떠맡아 온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1976년 10월 22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주택공사의 잠실 5단지 분양 광고는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함을 보여준다. 당시 주택공사의 광고는 3930세대에 이르는 대단지를 강조하면서 10% 수준의 낮은 건폐율과 70m에 이르는 널찍한 동간 간격과 넓은 녹지, 수영장과 상가 등 풍부한 복지시설 그리고 전기·통신 등을 지하 공동구에 매설하여 미관과 안전을 확보하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다. 50년 사이에 자동차의 보급에 따라 주차장에 대한 요구가 추가되었을 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거주 공간이 대단지 아파트밖에 없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모두가 원하는 아파트지만 기존의 공간에서 이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신규 택지가 고갈된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아파트 공급은 재건축과 재개발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주택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러한 과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자체는 이러한 과정을 도와주기보다는 자신들이 해야 할 사항들을 기부채납이나 공공기여라는 명분으로 떠넘기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철 지난 이론과 오래전에 무력화된 해외 사례를 적용할 것을 강요하는 전문가들이 책임 없이 권한만을 행사하면서 속도는 늦어지고 비용은 상승하지만 이를 고치려는 시도는 주택 가격 상승을 조장한다는 비난만 받을 뿐이다.

모두가 아파트에만 신경을 쓰는 사이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비아파트 위주의 공간들은 점점 낙후되고 있다. 벽돌 외장, 반지하와 옥탑방, 옥외 계단으로 대표되는 다세대주택은 서울을 상징하는 주거 공간이기도 하다. 주택난 해소를 위한 1984년 11월 건축법 개정에 따라 등장한 다세대주택은 기반 시설 확충 없이 세대수만 증가시켰기 때문에 도시 공간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주로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지역의 거주 환경 악화에 대한 지자체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 투입보다는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재개발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저렴한 주거지 감소로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저소득층의 생활 여건은 악화되고 있다.

더 좋은 주거 여건을 향한 욕구를 무조건 억누르기보다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주택 공급 확대와 저소득층 주거 환경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건축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부채납을 토지나 임대주택으로 받기보다는 현금으로 받아서 타 지역의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건축 속도 향상 및 주거 환경 개선 재원 마련 양 측면에서 효과적일 것이다. 재건축 과정에서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임대 아파트 공급을 의무화하기보다는 지자체가 지정한 타 지역에 임대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여 지자체에 제공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옵션을 두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서울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꼽혔던 방배동 카페 골목 초입에는 뒷벌 어린이 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복개천 위에 조성된 관계로 나무도 별로 없고 농구대와 바닥 분수만 있는 작은 공원이지만 사시사철 인접 다세대주택 거주자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포구의 경의선 숲길같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다세대주택이 아파트와 공존하면서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은 공원은 잘 보여주고 있다. 욕망을 억누르기보다는 효과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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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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