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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오늘과 내일/윤완준]영부인의 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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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완준 정치부장


“잽을 계속 맞다가 어느 순간 쿵 하고 쓰러질 수 있다.”

한 여권 인사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논란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 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44일 뒤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여당의 많은 인사들이 김 여사 문제가 집권 후반기 여권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고 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에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그 얼마 뒤 민주당이 또다시 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을 그때 여당이 부결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의혹 쌓이다 한순간 둑 무너질 수도”

“당원들조차 김 여사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최근 김 여사에 대한 여론이 진짜 안 좋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오지만 정작 김 여사 문제 해결 방안은 “참모들이 윤 대통령과 제대로 토론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사과는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결심할 문제이지 참모들이 이러쿵저러쿵할 사안이 아니라고도 한다.

올해 초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토로한 적 있다. 김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던 때다. 언론이야 사과하라고 쓸 수 있지만 대통령이 사방에서 자신의 아내가 공격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서 어떤 논리로도 대통령을 설득하기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총선 전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을 결정할 때 한 참모가 2000명 숫자를 고집하지 말자고 했다가 윤 대통령에게 호되게 깨진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참모들이 김 여사 문제를 직언하기 어려운 속내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총선 참패 뒤 대통령실은 “민심을 제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고 했지만 민정수석실 역시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민심을 전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니 여당에서 “민정수석실은 뭐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한 뒤 주변에 “용산에서 김 여사 얘기를 안 하니 나라도 해야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 여사 문제가 성역화되는 와중에 김 여사 관련 의혹은 자꾸만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공개 발언을 보면 김 여사가 김영선 전 의원 문제와 관련해 명태균 씨든 누구든 텔레그램을 주고받은 건 분명해 보인다. 이 의원은 “메시지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정말 총선 공천에 개입했는지 아닌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천 관련 얘기를 민감한 시기에 영부인이 외부인과 주고받았다면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

그렇다 보니 여권에서 이런 한숨도 나온다. 김 여사가 의원 부인이라도 해봤으면 정치인 아내로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을 함부로 접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금도(禁度)라도 깨달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총장을 지낸 공직자의 아내가 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의문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김 여사 문제 직언 어려운 분위기라니

언제 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김 여사 논란 해결을 미루는 건 문제다. 시중엔 “김 여사가 V1이라 제2부속실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마저 돈다.

전직 대통령실 인사는 총선 때 역대 대통령들이 레임덕에 빠진 과정을 다 찾아보다가 잠이 안 왔다고 했다. 지금 참모들은 어떨까.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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