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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처럼 시작한 자기 성찰의 끝…연극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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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남명렬·강신구 등 출연…"도덕과 양심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

연합뉴스

연극 '트랩' 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변호사가 피고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자기한테만큼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피고는 "완벽히 없다"며 자신만만하다.

그저 심심한 노인들의 놀이라고 생각하고 모의 법정에 피고 역할로 선 트랍스는 '독사같이 교활하다'는 검사 앞에서도 여유롭다. 묻는 말에 가감 없이 대답하고, 무거운 혐의를 씌우려고 몰아세우는데도 흥미로운 듯 웃음을 터트린다.

"전 그저 상식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요."

이날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트랩'은 우연히 벌어진 모의재판에서 인간의 숨은 죄를 추적하는 블랙코미디다. 스위스 소설가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한다.

하수민 연출은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트랩' 프레스콜에 배우들과 함께 참석해 "이 작품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과 양심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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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트랩' 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극 중 검사의 이름 초른은 독일어로 분노를 뜻하고, 변호사의 이름 쿰머는 걱정을 뜻한다. 마지막에 판결하는 판사이자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집주인을 위에 계신 분(신)이라고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양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은 요즘 사회 속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출장길에 오른 섬유회사 판매 총책임자 트랍스는 자동차 사고로 조용한 시골 마을의 퇴직한 판사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집주인은 그를 특이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한다.

과거에 판사, 검사, 변호사, 사형집행관으로 일했다는 네 명의 노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서 모의재판을 하며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들은 트랍스에게 피고 역으로 놀이에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다.

숨길 것도, 죄지은 것도 없다는 트랍스는 호기심으로 초대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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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트랩' 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라며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재판을 즐기던 트랍스는 어느 순간부터 웃음기를 잃는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지난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노인들 앞에서 하나둘씩 꺼내놓고 난 트랩스는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에 잔뜩 신이 난 듯 보인다.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외치는데, 극 후반부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리면서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극의 전체 내용이 다이닝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다 보니 자칫 늘어질 만도 하지만 여섯 명의 배우가 90분 동안 펼치는 빈틈 없는 연기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주인공 트랍스를 연기한 김명기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변화해가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집주인 역의 남명렬은 여든을 앞둔 노인으로 변신해 관록의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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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트랩' 공연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검사 역의 강신구, 변호사 역의 김신기는 팽팽하게 부딪히며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가사도우미 시모네 역의 이승우는 피아노 연주까지 소화해내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남명렬은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100명의 관객이 있다면 100가지 방법으로 연극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많은 행동들을 깊게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의 무가치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연극 '이방인'은 이날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상연된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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