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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김시덕의 도시 발견] 경상북도 산골짜기에서 지방 소멸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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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두 가지 용어가 정부와 지자체, 국회와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지역구가 해체되거나 지나치게 넓어져서 정치적 거점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 국회의원들, 인구가 줄어들면 직제가 줄어들어 승진의 기회가 사라지는 공무원들, 이 두 부류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지자체 간 통합을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려 한다. 그런 계산이 기묘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 지난 총선 때 전국을 휩쓴 메가시티 논쟁이었다. 지난해 이 칼럼에서 이미 예측한 대로, 총선 전 메가시티 논쟁은 단 한 곳의 성공 사례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소멸됐다.

동시에 지난 칼럼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정치인·행정가들의 계산과는 무관하게 1995년의 도농 통합 선거와 같은 전국적 규모의 행정 통폐합이 추진돼야 한다. 이때 통폐합 기준은 기존 정치인·행정가들의 자리가 보전되느냐가 아니라, 재탄생할 지자체가 시민 개개인의 생활권에 맞는가이다. 기존에 이뤄지고 있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논의는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지역특성 MBTI'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면피를 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기존 논의에서 문제 삼아야 할 또 하나의 대전제가 있다. 자신들이 어릴 때 경험했던 고향의 흥성거림을 되살려야 한다는 전제다.

현대 한국의 도시와 농산어촌을 답사하는 직업상, 대도시가 아닌 지역을 다루는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이들 뉴스를 보다 보면 "예전에는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다녔던 ○○ 지역에서 이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공실만 눈에 띈다" 등의 보도가 자주 나온다.

이런 보도의 대상이 되는 지역은 주로 원도심 중심가다. 원도심에 있던 시청·군청·방송사 등이 외곽 택지지구로 옮겨지고, 공무원이나 지역 방송사 직원들도 외곽 신도시에 살고 있다. 본인들부터 원도심을 떠나 신도시로 옮겨가서 살면서, 과거 자신들이 기억하던 원도심의 흥성거림이 사라졌다며 서울·부산 같은 대도시로의 쏠림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도심의 옛 영화를 부활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관청이나 방송사 같은 기간시설, 또는 서울·경기도에서 이전하는 정부부처를 벌판 한가운데의 신도시가 아니라 원도심에 (재)배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인구 10만 단위의 시군도 틈만 나면 외곽에 신도시를 짓고 관청을 옮기기에 바쁘다.

이들의 행태는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도시든 농산어촌이든 흥망성쇠가 있다. 어떤 지역이든 일정 기간 동안 번성하고 나면 수명을 다하고, 그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넘긴다. 이들은 지역의 흥망성쇠를 따라 옮겨갔을 뿐이다.

또한 특정 산업이 번성할 때는 인구가 유입됐다가 그 산업이 종료되면 인구가 빠져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남쪽과 접해 있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는, 백 년 전 금정금광이 운영돼 번성하던 곳이다. 봉화군청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걸리는 이 산골짜기에 한때는 1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했다. 이 산골짜기에서 대구로 가던 직행버스가 운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광 운영이 끝나자 1만명의 사람들이 흩어졌고, 그 시절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이들이 민박집을 운영하며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금광 덕분에 1만명 가까운 사람이 살던 봉화군의 이 산골짜기는, 이제는 수십 명이 살까 말까 한 한적한 산촌으로 되돌아갔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면, 이런 지역까지 모두 예전 수준의 인구와 번영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하지만 모두 알고 있듯이 한국의 인구는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고, 몇몇 지역으로의 인구 집중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구 감소 시대에 필요한 계획을 진심으로 수립할 때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산골마을부터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매일경제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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