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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쩐의 전쟁’ 누가 이겨도 ‘승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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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 돌입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연일 격화하는 가운데 극한 갈등의 종착지를 두고 이목이 쏠린다.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가운데 어느 쪽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이번 분쟁의 후폭풍이 달라진다. 영풍·MBK 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전격 상향한 가운데, 고려아연은 40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 발행에 나서 대항 공개매수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경영권 분쟁이 일방 승리로 일단락되더라도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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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지배구조

극한 갈등 불씨 내포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난 9월 13일 영풍이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약 7~14.6%를 10월 4일까지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밝히면서 점화됐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간 주장은 팽팽히 맞선다.

MBK가 지적하는 고려아연 문제는 크게 네 가지다. 최 회장이 경영 주도권을 잡은 2019년 이후 ▲재무건전성 악화 ▲38개 투자 기업 중 30곳 순손실 ▲원아시아파트너스 5560억원 대규모 투자와 손실 ▲이그니오홀딩스 ‘깜깜이 투자’ 등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이 “자기 회사 경영도 제대로 못하면서 고려아연 경영권을 노린다”고 반박한다.

양측 극한 갈등은 영풍 측에서 경영권 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두 집안은 동업 관계지만, 사업 시너지 측면에서는 비대칭적 관계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영풍 영업이익이 지분법손익보다 많은 해는 없었다. 2022년에는 고려아연 배당금으로만 1039억원을 받았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과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얻는 이익이 거의 없다. 영풍의 종속회사 대부분은 인쇄회로기판 사업을 하고 있어 사업적 시너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고려아연은 영풍으로부터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원재료 등을 매입해 영풍 매출 기여도가 높다. 영풍이 고려아연에 제품과 서비스 등을 매입하는 규모는 미미하다.

비대칭적 사업 관계 고착화는 영풍의 고려아연 의존도 심화로 이어졌고 이는 최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기조와 맞물려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됐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업황 변화로 제련업 기반 사업 다각화가 절실했다. 제련업은 안정적 이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중국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전방 수요 둔화로 사업 다각화가 절실한 변곡점에 놓였던 터다. 아연의 주된 용도 가운데 하나가 철 부식 방지인데,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로 철 수요가 급감했다. 그럼에도 장 씨 집안 측에서는 차입을 활용한 투자를 마뜩잖게 바라본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배당금 등 현금 유입을 바라는 장 씨 집안 측과 사업 다각화를 바란 최 회장 일가 간 억눌린 갈등이 ‘막장’ 싸움으로 치달았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 역시 지배구조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최 회장은 창업자 가문 일원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지만, 고려아연 지분율은 1.8%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중학교 동창이 대표로 재직 중인 자산운용사에 수천억원을 투자한 것은 절차적 흠결이 없더라도 투자 규모와 목적의 정당성을 두고 뒷말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의사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상법상 금융 투자는 이사회 의결 사항이 아니다. 고려아연 측은 “내부 투자심의를 거쳐 투자를 집행한 건으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최 회장이 주도한 투자에 투심위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의견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봤다.

최 회장으로 승계 과정에서 내부 갈등 조율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선대 최창걸 명예회장은 건강 악화로 수년 전부터 코마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다. 갈등을 조율할 중재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고려아연 안팎에선 ‘영풍이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위험 물질 취급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독립 경영을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환경 리스크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결별을 결심한 최 회장 측이 사업 시너지 강화를 명분으로 한화, 현대차, LG화학 등을 끌어들여 투자·자사주 교환을 단행했고 종국에는 1대 주주 영풍이 MBK를 끌어들이는 빌미가 됐단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방법이 고려됐더라면 작금의 극한 대립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사실상 1대 주주를 내쫓는 방식을 택한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라고 돌아봤다.

공개매수 시나리오는

MBK도 가격 상향 부담

향후 관건은 공개매수를 둘러싼 양측 대응이다.

‘머니 게임’ 측면에선 MBK 우위를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MBK는 영풍에 3000억원을 빌려 공개매수 가격을 75만원으로 10% 이상 올렸다. 2차 공개매수 가격 75만원은 MBK가 파악한 기관투자자 평균 취득단가를 50% 이상 웃돈다. MBK 입장에선 이들 보유 지분 가운데 7%만 가져와도 승기를 굳힌다고 본다.

다만, 공개매수 가격 상향으로 MBK 역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대규모 레버리지가 투입되는 PEF 속성에 비춰, MBK 입장에서는 공개매수 가격을 올려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훗날 투자금 회수를 낙관하기 힘들다. MBK는 공개매수 예상 소요 자금 약 2조3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을 내년 6월 만기, 최소 고정금리 5.7%에 차입한다. 만기까지 이자만 630억원에 달한다. 영풍에도 내년 9월까지 연 5.7% 금리로 3000억원을 빌린다.

이에 따라, MBK가 펀드 출자자(LP)에 보장해야 할 IRR(내부수익률)은 10% 중반 수준을 훌쩍 웃돌 것이라는 게 PE업계 시각이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더라도 최소 5~7년 뒤 이 정도 수준의 IRR에 맞춰 원활한 투자금 회수가 가능할지 의구심을 던지는 시선이 적지 않다. PE업계 관계자는 “15조원에 육박하는 최근 고려아연 시총 기준으로 올해 예상 PER이 20배를 웃돈다. 투자 원금 회수 기간을 보여주는 EV/EBITDA 배수로 봐도 이미 두 자릿수로 회수까지 어림잡아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 우려했다.

더군다나 MBK는 중국 자본 우려를 불식하려 “해외 매각은 없다”고 공언했다. 이는 스스로 잠재적 매수자 범위를 대폭 줄인 것으로 훗날 매각 과정에서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에 놓일 수 있다.

최 회장 역시 MBK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 난관이 상당하다. 공정거래법상 고려아연은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게 원천 차단된다. 최 회장 개인 차원에서 우호 세력 중심으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수는 있다. 현대차·LG·한화 등이 최 회장 편에 선다고 가정할 경우 최 회장은 약 6%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소요 자금은 최소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됐지만, MBK가 공개매수 가격을 올려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판이다.

IB업계와 시장에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첫째,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 주관사를 끼고 브리지론을 제공받아 글로벌 PEF를 끌어들여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방안이다. 둘째, 고려아연 전략적

투자자(SI) 트라피규라 등을 우군으로 확보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수 있다.

첫 번째 방안의 문제는 재무적투자자(FI) 측 회수 방안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최 회장 편에 선 FI 측은 MBK가 제시한 상향된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야 한다. 확실한 회수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투자심의위 통과도 낙관하기 힘들다. 결국 FI를 백기사로 끌어들이려면 최 회장 입장에선 일가 지분 전체를 담보로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IB업계 관계자는 “FI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주주간계약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회수 안전성을 높이려 최 회장 측 지분까지 매도할 수 있게 드래그얼롱(drag-along·동반매도청구권)을 걸어둘 수 있다”고 짚었다. 현실적으로 최 회장이 풋옵션 대금을 단기간 마련하기 힘든 만큼, 훗날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더 키울 수 있다.

두 번째 방안 역시 MBK 논리대로 배임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걸림돌이다. SI의 경우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싸게 매입하더라도 단기간 지분 매각 우려는 덜 수 있다. 다만, SI 측 이사회에서 확실한 반대급부 없이 고가의 전략적 지분 투자를 용인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걸림돌이다. 사업 전개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지분 투자 대가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배임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MBK 측 논리기도 하다.

시장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후순위 출자자로 공동 투자자인 FI를 떠받치는 구조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FI 측 원금 회수 확률을 높일 수 있으며 현행법을 우회해 고려아연 자기자본을 공개매수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향후 콜옵션을 통해 선순위 투자자 지분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느 쪽을 택하든 미래 성장 재원의 상당 부분을 경영권 방어에 소진한다는 점은 부담스럽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향후 현금흐름에 병목이 생겨 고려아연 신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겨도 진 것과 진배없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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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촉발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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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리스크 직면한 MBK

장외 여론전 사활

공개매수 실패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과거 사례를 돌아봐도 국내에서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한 공개매수가 성공한 경우는 현재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MBK의 공개매수 가격 상향으로 최 회장 측 대항 공개매수 기대감이 반영될 경우 투자자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공개매수 가격과 고려아연 주가 괴리폭을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MBK 역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게 시장 시각이다. MBK가 이례적으로 장외 여론전에 사활을 건 것도 이번 공개매수 실패 땐 평판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라는 절박함 탓으로 분석된다. 이미 MBK는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적대적 M&A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이번에도 성과를 못 내면 치명적인 평판 리스크에 노출된다. 더군다나 잇단 적대적 M&A 시도로 국내 재계 오너 일가와는 단단히 척을 졌다. 앞으로 국내 대기업 사업 재편 과정에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MBK가 경영권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기업가치 제고와 투자금 회수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당장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CTO)을 필두로 한 핵심 엔지니어들은 “MBK 경영 땐 전원 퇴사하겠다”고 날을 세운다. 고려아연 국내외 고객사 80여곳도 최 회장 편에 섰다. 고려아연이 2차전지 소재인 전구체 가공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선정해달라고 정부에 신청한 것도 변수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경제 안보 등의 이유로 정부 승인이 있어야 외국 기업에 인수될 수 있다. MBK가 경영권을 확보해도 훗날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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