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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아휴, 아파트에선 못 써요"…유럽 달군 히트펌프, 한국선 안 팔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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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외 열 끌어오는 방식...한국 극심한 추위엔 효과 떨어져
아파트 설치하기에 부피도 커...전기료 폭탄 맞을수도

머니투데이

글로벌 히트펌프 시장 전망/그래픽=김다나


유럽과 미국에서 후끈하게 팔리는 히트펌프가 국내에선 맥을 못 춘다. 각 정부들의 정책 차이도 있지만 히트펌프가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주거환경과 겨울이 극도로 추운 기후 사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27일 난방설비 업계에 따르면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는 일찍이 2000년대부터 히트펌프 사업을 했지만 국내에서 판매는 미미하다. 공장과 상업용 건물, 비닐하우스 등에 판매되기는 하지만 매우 소량이고, 가정용으로는 "일부 전원주택을 제외하고 애당초 판매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제품의 가짓수도 경동나비엔은 1종류, 귀뚜라미도 공개가 어렵지만 적다. 업계 관계자는 "히트펌프의 내수 자체가 매우 작다"고 말했다.

히트펌프는 보일러 위주의 한국에 아직 낯선 설비다. 보일러는 도시가스로 인위적인 열을 만든다면, 히트펌프는 자연의 공기열과 수열, 지열을 실내로 끌어오는 식으로 난방을 한다. 여름에는 실내의 열을 바깥에 배출해 냉방도 할 수 있다.

전기만 쓰기 때문이 친환경적이다.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유럽에서 매우 인기다. 각국 정부가 설치를 적극 권장하며 프랑스는 2022년 히트펌프의 설치대수가 일반 보일러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유럽히트펌프협회(EHPA)의 자료상 2022년 유럽에서 히트펌프의 한해 판매량은 전년보다 38% 늘어 300만대로 역대 최다 수준이었다. 유럽에선 러시아에 도시가스를 의존하지 않으려 히트펌프 설치가 늘어난 면도 있다.

미국도 정부가 히트펌프를 5대 핵심 청정에너지 기술 사업의 하나로 선정해 구매를 장려한다. 지난해에 가스난로보다 히트펌프가 21% 더 많이 팔렸다. 글로벌 시장도 올해 687억 달러(약 94조원)에서 2029년에는 1097억 달러(약 15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바일란트 등이 히트펌프 제조사로 유명하다.

그런데 국내는 설치가 저조하다. 겨울이 너무 추워서다. 히트펌프는 실외에 끌어올 열이 있어야 실내 난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겨울 기온이 수시로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 활용할 열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공기열 히트펌프는 설치 사례가 매우 드물다. 그나마 수열 히트펌프가 바다에 인접한 소수의 공장에 설치될 수 있으나, 그마저도 한겨울에는 보일러를 함께 가동해야 한다.

외국도 히트펌프 전환에 적극적인 나라들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랑스 등 따뜻한 나라들이다. 미국도 캘리포니아 등 남부 지방이 앞장 서 히트펌프를 도입한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지열 히트펌프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 지열은 연중 평균 15도로 상대적으로 고르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의 전원주택이나 펜션, 공공시설, 비닐하우스 등에 설치된 히트펌프는 상당수가 지열 방식이다.

문제는 지열 방식도 히트펌프가 매우 커 아파트나 빌라에 설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히트펌프는 실내기의 가로 길이가 2m, 높이는 0.5m에 달하는 것이 많아 다용도실에 비치하기 부담스럽다. 더 큰 문제는 실외기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에어컨의 실외기처럼 창문 밖에 매달 수가 없다.

또 전기만 사용하니 누진세가 있는 한국에선 전기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히트펌프의 부피 때문에 아파트, 빌라에 설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한다.

한국은 히트펌프 대신 난방 시 발생한 수증기의 열을 재활용해 난방효율을 높인 콘덴싱보일러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 유럽도 기온이 낮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은 콘덴싱보일러 활용을 늘리려 노력한다. 보일러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 히트펌프는 아파트 개별 세대에 들어가기에 부피가 매우 크고, 한겨울 난방 효율이 낮아 활용 가능성이 낮다"며 "콘덴싱보일러로 친환경 움직임에 동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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