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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단독] "안심하라더니" 청년보증금 떼먹은 서울시 청년안심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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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에 사는 청년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은 청년안심주택 홈페이지의 모습. 청년안심주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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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김용철(가명)씨는 2022년 서울 도봉구에 아담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공용면적까지 30㎡가 조금 넘고 화장실이 딸린 보증금 2500만 원짜리 원룸이었지만, 청년의 꿈을 꾸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서울시의 ‘청년안심주택’ 사업을 통해 계약한 곳이어서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그의 ‘안심’은 2년도 안 돼 무너졌다. 지난해 12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나가려 했지만, 시행사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약 만료 이틀 전 시행사 측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 당장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청년안심주택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들어왔는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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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비슷한 피해를 김씨 외에도 5명이 더 있었다. 6명의 청년이 2억원 정도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안심’을 내세운 서울시 사업이었기에 청년들에겐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은 시와 민간 시행사가 공동으로 역세권 등에 소규모 단지를 세워 청년·신혼부부 등이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공급한 공공임대(시세 30~70%) 및 공공지원 민간임대(시세 75~85%) 주택이다. 서울시 각 지하철·전철역 주변 등지에 입주예정을 포함해 57곳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첫 번째 사례다.

주된 원인은 시행사의 경영 상황 악화였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김씨는 지난 2월 서울북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시행사를 상대로 한 보증금 반환 소송 1심은 지난 6월 김씨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26일 김씨는 아직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청년안심주택에서 일종의 전세 사기를 당한 셈”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설령 해당 주택이 부동산 경매에 들어가더라도 경매 일정 등을 고려하면 보증금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행사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회사 자금 130억원 중 약 88억원이 은행 대출금 상환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시행사 관계자는 “은행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서 상환 기한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지만, 계약상 보증금 계좌에 있던 돈 대부분이 대출금 상환에 쓰이게 됐다”며 “보증금 반환 소송에도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했다.

청년안심주택은 한 단지 안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와 민간 시행사가 공급하는 민간임대 세대가 혼합돼 있다. 민간임대의 경우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관리 주체는 서울시이지만, 계약은 시행사와 임차인이 맺는 것”이라며 “시 차원에서 개별 계약 관계에 대해 일일이 관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피해를 본 청년들 입장에선 ‘안심’이라는 말이 황당한 상황이다. 김씨는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시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소송도 직접 준비해야 했던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시행사는 보증금 반환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청년들에겐 큰돈일 텐데 반환이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관리 주체인 서울시 측은 “시행사와 소통해 하루빨리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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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건설업계에선 적잖은 민간시행사가 지난 2022년 전셋값 하락으로 인해 현금 흐름 및 자산 가치가 줄게 되면서 경영이 악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청년안심주택 시행사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보증금 미반환 등은 발생과 동시에 청년들의 피해로 직결되는 문제”라며 “(시행사가) 경영 악화 조짐이 보일 때부터 시 차원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에서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시도 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보증금 미반환은 청년안심주택 정책의 신뢰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서 기자 park.jongs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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