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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푸틴 “위협세력 도운 핵보유국에 핵 사용”…우크라 돕는 서방 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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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국가안보회의에서 핵교리 개정을 지시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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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공격 가능 조건을 정한 자국의 핵교리 개정을 지시했다. 개정 핵교리 초안에선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으로 러시아를 공격하면 지원한 핵보유국에도 러시아가 핵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산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경우 서방도 핵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25일(현지시간)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회의에서 “러시아는 급변하는 정치·군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상황 변화를 예견하고, 현 상황에 맞춰 전략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교리와 관련해 “핵 억지력의 대상이 되는 국가와 군사 동맹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며 “핵 억제 조치가 필요한 군사적 위협의 종류도 갱신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 대통령령 형식으로 갱신된 기존의 핵교리는 핵무기 공격을 받거나 러시아의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서방국의 지원으로 건재하자, 핵교리 개정 필요성이 러시아 내부에서 제기됐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최근 미국산 전술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S·최대 사거리 약 300㎞)와 미국산 부품이 사용된 영국·프랑스의 공대지 순항미사일 스톰섀도우(최대 사거리 560㎞)로 러시아 본토 타격을 구상함에 따라, 러시아는 핵교리 수정 카드를 전면에 꺼내 들었다.

타스 통신이 뼈대를 공개한 개정 핵교리 초안에서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과 함께, 혹은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이는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라는 대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타격에 들어갈 경우 미국과 유럽을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엄포로 보인다.

러시아는 또 맹방이자 우크라이나전 지원국인 “벨라루스가 공격당했을 때”와 “전략 및 전술 항공기의 대규모 이륙이나 러시아 영토를 향한 순항 미사일, 드론, 극초음속 무기 발사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정보 입수” 역시 핵 사용 조건으로 추가했다. 러시아가 핵 사용 조건으로 명시한 드론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드론 공격을 감행해 공항이 마비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타스 통신은 개정 핵교리 초안에 대해 “최근의 지정학적 변화와 군사적 위협과 위기에서 비롯된 개정안”이라며 “아직 푸틴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핵교리 개정이 당장 러시아의 핵사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단 미국은 유럽이 휘말릴 수 있고 군사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타격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에 영국과 프랑스는 찬성하지만 독일은 반대하는 등 유럽 내에서도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푸틴의 발언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해 러시아 본토 타격에 서방 미사일을 사용하기 위한 로비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핵 전문가인 파벨 포드빅 역시 워싱턴포스트(WP)에 “불확실성과 모호함 조성하려는 조치로, 서방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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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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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러시아 대통령 출신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6일 텔레그램을 통해 올린 성명에서 “예견된 일”이라며 “아직 생존본능을 잃지 않은 러시아의 적들이 머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에서 사용 가능한(오래된 핵탄두 제외) 핵탄두 9585기 가운데 러시아가 가장 많은 핵탄두(4380기)를 갖고 있다. 미국은 3708기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핵탄두 보유국이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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