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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홈리스도 여성도 따돌리지 않는 동등함, 집 아닌 축구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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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2024 홈리스 월드컵’ 심판 나탈리 핸들리(38·왼쪽)와 세라 프로바인(34).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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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팀(Go Team)! 고 팀!”



지난 24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동구 한양대 대운동장엔 전세계 소외 계층이 국가대표 선수로 참가해 4 대 4 풋살 경기를 펼치는 ‘서울 2024 홈리스 월드컵’이 한창이었다. 운동장을 누비는 선수들 사이엔 물론, 공정한 시합을 책임지는 24명의 심판도 있다. 이 중 여성 심판은 아직 단 2명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온 내털리 핸들리(38)와 세라 프로바인(34). 이들 또한 한때 알코올의존증과 정신질환을 겪으며 홈리스 생활을 했다. 축구로 삶의 고통을 견뎠는데, 그건 그라운드가 선사한 깨달음 덕분이다. 축구장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동등함’이 있었다. 아직은 소수인 여성 축구 심판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 또한 같다. 한겨레는 이날 경기를 앞둔 두 심판을 만나 삶과 축구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심판이 되기 전 홈리스 월드컵 웨일스팀 대표 선수였다. 핸들리는 2014년 칠레 홈리스 월드컵, 프로바인은 2017년 노르웨이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했다. 홈리스 월드컵은 인생에 단 한번 출전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은 그 경험이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핸들리는 “홈리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며 “내가 홈리스 경험이 있든, 약물중독을 겪은 사람이든,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든 아무런 상관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경기를 뛰는 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핸들리는 2014년 가족의 죽음 뒤 연인과의 약혼까지 무산되면서 자해와 술에 의존했다. 연인과 이별로 집을 나온 뒤, 몇달간 지인 집을 전전했다. 프로바인 또한 2013년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한살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런 시절, 두 사람은 웨일스 자선단체 ‘스트리트 풋볼’ 소개로 축구에 입문했다. 프로바인은 “축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팀을 이루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땀을 흘리면서 정신건강 문제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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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월드컵 심판 세라 프로바인이 레드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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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대표선수 생활 이후에도 축구는 이어졌다. 핸들리는 칠레 홈리스 월드컵 출전 뒤 2년 동안 웨일스팀 매니저를 맡다가 심판이 되기로 했다. 축구장의 동등함에 ‘젠더’ 또한 더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2017년 홈리스 월드컵 역사상 첫 여성 심판이 된 핸들리를 보며 프로바인 또한 꿈을 키웠다. 프로바인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과거 남성 심판만 고용하면서 ‘심판은 남성의 영역’이란 관행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경기를 공정하게 운영하고 상황을 컨트롤하는 건 여성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그라운드를 향한 이들의 꿈은 한층 커지고 있다. 핸들리는 각국의 여성 심판을 양성하는 일을 시작했다. 핸들리는 “아프리카 여자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지난 7월 여성 심판 15명을 교육하고 왔다”며 “이들이 잘 성장해 앞으로 더 많은 여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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