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마 뒤 대학교 문예창작 실기 수업에서 ‘냉장고에 든 음식’을 글쓰기 과제로 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반에서 한두 번 수업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음식과 많이 달랐다. 대학생들의 냉장고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건 엄마가 보낸 음식이었다. 어떤 학생의 글은 조금 더 진전되어 엄마가 보낸 음식을 모두 버렸다로 끝맺었다. 생각도 못 한 일이라 글 쓴 학생을 찾아,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친구처럼 보이는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먹을 시간이 없다고. 나는 다시 물었다. 시간이 없어도 밥은 먹지 않느냐고. 글 쓴 학생이 친구랑 먹어야 한다고 하자 아이들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랑 매일 밥을 먹지는 않잖아요,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또 물었다. 내 말이 답답했는지 맨 뒤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일어났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서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엄마가 보내준 음식만 먹으면 언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주변의 음식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중엔 엄마가 보내준 음식을 잘 먹는 학생도 있었지만, 안 먹는다고 해서 마음 상할 일은 아니었다. 친구랑 밥을 먹으며 삶을 나누고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세상 공부를 하고, 품을 떠난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 중이었다.
[정영선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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