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4년 반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하면서 한국은행의 피벗(통화정책 전환)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물가와 환율이 안정적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빅 컷(0.50%포인트 인하)'을 단행하면서 피벗을 위한 3박자가 충족됐다는 평가다.
문제는 수도권 집값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확대다. 연준과 보조를 맞춰 10월부터 금리를 내릴 게 유력한 상황이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인하 시점이 11월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 연준은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기존 연 5.25~5.5%에서 연 4.75~5.0%로 낮췄다. 2020년 3월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된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한·미 금리 차도 2.0%포인트에서 1.5%포인트로 축소되면서 한은의 10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이날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미국 피벗은 외환시장의 변동성 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향후 국내 경기·물가와 금융안정 여건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확대 흐름이 변수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전까지 대출 감소세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을 경우 인하 시점이 밀릴 수도 있다.
이달 들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첫째 주 9000억원, 둘째 주 1조3000억원 등으로 계속 불어나고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월 금통위까지 남은 3주 동안 주담대가 주간 1조원 이하로 줄어들 경우 10월에 0.25%포인트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금리 인하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부추길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달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시작되면서 월별 대출 증가 폭이 둔화하고는 있지만 7~8월 주택 매매 계약에 대한 잔금 대출이 9~11월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내수 진작을 바라는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국의 피벗 전환을 '글로벌 복합위기 종료' 신호로 평가하며 향후 정책의 무게 중심을 '내수 활성화'에 둬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주요국의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내수 활성화와 민생 안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면서도 "주택시장이 과열되거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추가 관리 수단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은은 내수 침체 극복을 위해 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고 하고 정부는 금리 정책을 이야기하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내수 부양을 위해선 두 정책 모두 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주경제=서민지·권성진·장선아 기자 vitaminj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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