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 의뢰 '경쟁력 보고서' 발표…무역 방어책·반도체전략 등 제안
자금조달 위한 '공동채권' 주장도…새 집행부 정책 반영 주목
EU 경쟁력 보고서 발표하는 드라기 전 총재 |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존적 위험'에 직면했다며 시급히 산업전략을 탈바꿈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공식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보고서에서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연간 7천500억∼8천억 유로(1천114조∼1천188조원)의 신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EU 국내총생산(GDP)의 4.4∼4.7%에 달하는 규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럽 재건 원조 계획인 '마셜플랜' 규모가 GDP의 1∼2%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가 넘는 비율의 공격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한 것이다.
특히 민간부문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회원국간 공동 투자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자본시장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공동 안전자산을 발행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금 조달을 위해 유로존 국가들이 연대 보증을 통해 공동명의로 발행하는 채권인 유로본드의 적극적인 발행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약 330쪽 분량의 보고서는 청정기술, 반도체, 국방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별 상황 진단과 정책적 해법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보호무역주의를 피해야 한다면서도 "개방무역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탈탄소화, 경쟁력 관련 공동 계획 추진 시에는 공평한 글로벌 경쟁환경과 역외에서 국가 지원을 받는 (업체들과의) 경쟁을 상쇄하기 위한 방어적 무역 조치가 수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중국산 관세 인상,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 규정 강화 등을 언급하면서 "EU에서는 외국인 직접 투자 심사가 각 회원국 권한이어서 집단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글로벌 수요가 급증한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EU 반도체 전략' 수립도 주문했다.
EU 예산을 통한 반도체 부문 공동 지원, 신규 사업 패스트트랙 승인을 비롯해 역내 공동·민간입찰 사업 촉진을 위한 'EU 반도체 인증제도' 신설 등이 제시됐다. EU 차원의 반도체 수출통제 관리 강화, 제3국의 반도체 장비·소재 수출통제에 따른 EU 이익 방어 등도 언급됐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날 경쟁력 쇠락을 막으려면 전반적 개혁이 '급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복잡한 EU의 의사결정 구조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EU는 여러 회원국이 모인 특성상 특정 회원국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거나 아예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날 보고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해 9월 연례 정책연설에서 경쟁력 강화 방안을 연구해달라고 공식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드라기 전 총재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과감한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으로 유로존(당시 유로화 사용 19개국) 부채위기를 막아내 '슈퍼 마리오', '유로존 구원투수' 등으로 불리는 대표적 금융경제통이라는 점에서 보고서 내용에 이목이 쏠렸다.
이날 제안 중 일부는 오는 11월 이후 출범하는 '폰데어라이엔 2기' 정책 수립 시 어느 정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가 27개국의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한 데다 공동채권 등 일부 사안의 경우 EU 내에서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회원국들 입장차가 크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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