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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앞치마의마법… 노신사요리교실의숨겨진인기비밀 [건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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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의 첫걸음’ 남성 노인 요리 교실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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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주방, 상남자의 부엌, 아버지 요리 교실, 은빛네트워쿡(cook)’. 중장년, 노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 교실이 문전성시다. 눈길 끄는 작명 감각에서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남자도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주방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성 어르신도 이젠 앞치마를 두른다. ‘남자 체면에’라며 부엌 문턱조차 밟지 않았던 것과 달라진 풍경이다.

“요새 먹방 프로그램 많이 하는데 너무 조미료 많이 쓴다 싶으면 나름대로 비평도 해요. 샐러드에 마요네즈 너무 많이 넣지 말고 식초를 넣으면 입맛 나고 몸에도 좋아요”

지난 2일 전화기 너머로 요리 수업 후기를 전하는 이윤의(72·서울 노원구)씨의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이날 저녁 밥상으로 찌개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혈압약을 먹는 이씨의 삼삼한 조리 전략은 소금을 줄이고 간장과 버섯 가루 같은 조미료를 적당히 섞는 것이다. 그러면 염도를 낮추면서도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짜게 먹지 말라고 해도 방법을 몰랐는데 염도 조절하는 법을 알게 되니 혈압도 상당히 좋아졌다. 건강이란 큰 수확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초 난생처음 요리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달을 다녔다. 오래전 은퇴한 그에게 요리는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 배움에 망설이지 않은 덕분에 이제 뜨끈한 찌개 정도는 거뜬히 끓인다. 이씨는 “아이들도 독립했고 집사람도 없으니 혼자 밥을 챙겨야 했다”며 “처음엔 요리 배우는 게 좀 창피한 거 같았는데 몇 번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주 재밌더라”고 했다.



4명 중 3명은 배우자에게 의존



‘백세시대’ 건강의 기본이 식단이다. 하지만 남성 노인은 조리 경험이 부족하다. 홀로 되거나 배우자 병간호를 해야 할 때처럼 스스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 상황을 어려워한다. 한국 남성 노인 4명 중 3명은 배우자가 조리한 식사에 의존한다. 직접 식사를 준비할 땐 반조리 식품 이용률이 31%로 여성(8.9%)보다 4배 높다(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지, 2021).

서울 노원구 구립 수락노인종합복지관의 남성 요리 교실 ‘신사의 주방’을 담당하는 김현숙 사회복지사는 “요리에 서툴렀던 분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면 큰 성취감을 경험한다”며 “스스로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짜게 먹는 경향이 있는데 요리 교실에서는 이런 습관을 바로잡는 저염식을 중점적으로 수업한다. 김 사회복지사는 “염도 측정계를 나눠 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렸더니 식습관 개선이 돼 싱겁게 드시려고 한다. 식사를 사 드셨던 분들도 다양한 요리를 직접 해보겠다며 조리법을 적극적으로 배워 간다”고 말했다.



가족과 소통에 긍정적 영향 줘



남성에게 요리는 단순한 가사 활동을 넘어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시금 되찾는 의미가 있다. ‘은퇴한 남성 노인 학습자들의 요리교실 참여경험 탐색’(한국성인교육학회, 2017)에 따르면 학습자들은 스스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할 수 있게 돼 삶에서 행복을 느꼈다. 또 요리를 통해 가족을 배려하고 돌보는 역할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삶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런 결실을 ‘행복한 밥상’ ‘외조의 첫걸음’으로 표현했다. 연구팀은 “압축적인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은퇴한 남성 노인들이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부부·가족 간 원활한 소통을 끌어내는 데 요리가 긍정적인 영향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도 그럴까. 요리 교실에 다니는 60대 신씨는 “가족들에게 아빠 요리를 선보일 때의 설렘을 알게 됐다”며 “바쁘게 앞날만 보며 소통이 부족한 아버지로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김씨는 “아내가 아프면 내가 밥상을 차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동안 밥상 차려준 아내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중장년 남성 1인 가구도 적극적으로 요리를 취미 삼을 만하다. 이혼, 사별, 기러기 아빠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 가구가 증가세다. 여성보다 남성이, 미혼자보다 이혼·별거·사별을 경험한 중고령자의 우울 수준이 높다. 지자체와 복지관에서 중장년 1인 가구와 남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요리 교실을 운영하는 배경이다. 건강 식단을 배우며 영양 균형을 맞추고, 함께 요리하며 사회적 고립감을 완화하도록 돕는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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