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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감독 "헬조선에 지친 20대 여성, 건강 보수청년 함께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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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

"20대 여성 탈한국기, 건강 보수청년…

각자 삶의 추구 나란히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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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싫어서'(8월 28일 개봉) 각본, 연출을 맡은 장건재 감독을 지난달 22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엔케이컨텐츠


20대 후반의 직장인 계나(고아성)는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한다. 가난해도 화목한 가족, 다정한 남자친구를 뒤로 한 채,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서”란 이유다.

장강명 작가의 2015년 동명 소설 원작 영화 ‘한국이 싫어서’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공개 후 올초 영국 BBC 방송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 ‘토킹 무비스’가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와 함께 한국 현실을 담은 젊은 영화로 취재할 만큼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이 영화가 지난달 28일 개봉했다.

원작이 금융 사기가 횡행하는 한국 사회의 양면성, 성희롱‧남녀차별‧학벌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촘촘하게 묘사했다면, 영화는 주인공 계나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깨닫는 과정에 방점을 뒀다.



"고난의 포르노그래피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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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 한국의 각박한 나날과 뉴질랜드 이민 초의 따뜻한 풍광이 교차하는 영화에서 계나는 점차 자신이 원했던 삶의 모습을 찾아간다. 장건재 감독은 주연 배우 고아성에 대해 "완성형 인간을 지향하거나 어느 선에 가 닿으려기보다 자신의 삶을 유동적 가능성에 두는 지점이 계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사진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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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고 춥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계나에게 한겨울 인천 집에서 서울 강남까지의 출퇴근길은 고단하고, 상사의 사내 비리에 동조해야 하는 직장 생활은 갑갑하다. 언론인 지망생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이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성취감을 원동력 삼아 잘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계나에겐 순간 순간의 행복감이 중요하다.

계나가 즐겨 읽는 디즈니 동화책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 그런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난달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서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는 주연 고아성(32)은 계나가 마냥 착하거나 피해자 성이 도드라진 역할이 아니란 점에 주목했다고 했다.

각본‧연출을 맡은 장건재(46) 감독은 “한국사회 고난의 포르노그래피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질문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다”면서 “계나가 삶의 지반을 바꾸면서까지 찾으려 한 게 뭔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세계관을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일 합작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흑백 영화 ‘5시부터 9시까지의 주희’(2023),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괴이’(2022) 등 경계에 선 인물들을 그려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그를 개봉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9년 전 원작이 출간되자마자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청년 세대에게 ‘헬조선’이란 자조적 신조어가 유행했던 시기다. “그런 시의성이 원작의 힘이었다. 영화엔 원작 이후 시간의 간극까지 담아보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지난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누적된 엄청난 피로감”을 예로 들었다.



세월호·강남역·이태원 참사…생존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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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뉴질랜드로 간 계나는 현지 법에 무지해서 벌어진 사건, 인종차별 등에 힘겨워 하지만, 한국과는 또 다른 얼굴로 삶을 개척해나간다. 사진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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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는 평범해 보이는 20대 후반 직장인이지만, 운 좋게 생존한 여성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2024년 서른을 맞는 계나는 10년 전 또래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다 죽은 걸 목격했고(세월호 참사), 20대가 돼선 강남역에서 또래 여성이 모르는 사람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겪는다. 직장 시절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다.

장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가시화됐다”고도 했다. 원작의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배경을 바꾼 것도 “뉴질랜드가 코로나 방역 체계가 가장 강력했던 나라 중 하나고, 여성 총리가 재임 중 출산 휴가를 가질 만큼 여성인권 지수가 높은 나라”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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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의 남자친구 지명 역 배우 김우겸(왼쪽부터), 계나 역의 고아성, 유학생 재인 역의 주종혁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한국이 싫어서’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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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가 현지 시민권을 취득하는 원작 결말은 비틀었다. 계나가 한국에 잠시 귀국하는 시점이 변곡점이다. 만년 공무원 준비생이던 대학 동창의 죽음, 뉴질랜드의 지진과 교민 가족의 참사 등 원작에 없던 사건들이 계나를 제3의 나라로 향하게 한다.

“잇따른 죽음이 하나의 큰 재난처럼 그려지는 ‘죽음의 시퀀스’”라 짚은 장 감독은 “뉴질랜드에서 정규직을 얻고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지만, 현지 유학생들, 교민 사회를 취재해보니 도돌이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꽤 많은 이민자가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하는 역이민 경향도 있었다"면서 "자신의 환경을 바꾸면서 계속 모색해나가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20대 건강한 보수 청년 캐릭터도 공들여"



뉴질랜드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는 생활력 강한 한인 아내(김지영)와 달리 이민 생활에 적응 못 하는 남편(박성일) 모습은 장 감독이 현지 취재로 새롭게 빚어냈다. “실제 이민 사회에서 가장 역할이 바뀌는 사례가 많고 한국 중년 남성이 상대적으로 적응 못 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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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회계학 공부 도중 요리사 자질에 눈뜨는 유학생 재인(주종혁) 등 청년 캐릭터도 다채롭다. 배우 주종혁은 실제 현지 유학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계나와 정반대의 미래를 꾸려나가는 지명은 장 감독이 “20대의 건강한 보수 청년 모델”로 상정한 캐릭터다. 특정한 삶의 선택을 두둔하기보다는 각자의 성향과 가치관에 맞는 삶을 추구하는 걸 응원하는 게 영화의 골자다.

“지명은 전통적 의미의 보수성,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보상 받는다는 사회적 가치를 믿는 인물”이라 설명한 장 감독은 “계나가 한국을 떠나게 하는 요소를 늘어놓기보다, 이민 가는 계나를 마지막까지 붙드는 그런 인물을 만들고자 했다.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 다음 단계를 꿈꿔볼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을 탈(脫)한국을 꿈꾸는 계나와 나란히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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