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전번 대신 11자리 홈넘버
고객DB 유출 가능성 원천 차단
정부 개인정보 유출 ‘엄벌’ 기조
타 유통업체로 도입 확산될 듯
개인정보 보호 스탬프(왼쪽)와 개인정보 보호 스탬프를 사용하는 모습. 쿠팡, 유튜브 '꼬장티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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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A씨는 2023년 9월 늦은 밤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스팸 메시지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계속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랑 계속 사귀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주변 사람인 것 같았다. 같은 해 11월 연락처를 차단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한 달 뒤 어느 날 밤 자정 집에 있던 A씨는 얼어버렸다.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같은 오피스텔 맞은편 집에 사는 B씨였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진 택배 운송장에서 A씨 연락처를 찾아내 카카오톡으로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락이 차단당하자 집 안에서 몰래 A씨가 도어록 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엿보는 방식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이후 도어록 소리가 나지 않게 조작한 뒤 A씨 집에 침입한 것. 경찰에 붙잡힌 B씨는 2월 법원에서 스토킹과 주거침입 혐의로 벌금 300만 원과 40시간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을 선고받았다. 범죄의 출발점은 택배 운송장이었다.
택배 물류센터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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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내 택배 물동량은 40억여 건. 주민등록 인구(5,130만여 명)로 나누면 국민 한 명당 연간 78개 택배를 주고받은 셈이다. 현관문 앞에 쌓인 택배는 일상 풍경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택배 운송장에는 이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일보가 2일 서울 중구 후암동 일대 주택가를 돌며 무작위로 택배 운송장을 확인해보니 총 10건 중 4건(40%)에서 이름·연락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정보는 언제든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 2022년 6월 부산에서도 오피스텔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 운송장에서 확인한 연락처로 수차례 전화하는 등 스토킹을 일삼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롯데홈쇼핑 직원들이 새롭게 변경된 보안박스를 선보이고 있다. 롯데홈쇼핑 제공 |
롯데홈쇼핑이 이날 "운송장에 이름과 연락처를 노출하지 않는 보안택배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조치다. 앞으로 이 회사 고객이 물건을 주문 후 배송 방법으로 보안 택배를 선택하면 운송장에는 이름, 연락처를 암호화한 홈넘버(11자리)가 기록된다. 사실 지금도 롯데홈쇼핑을 비롯한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안심번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락처 대신 0504로 시작하는 12자리 가상 번호가 운송장에 찍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운송장만 암호화한다는 점은 문제다. 플랫폼과 판매자, 택배사 등에는 고객 개인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객 데이터베이스(DB) 파일이 유출돼 보이스피싱 등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에 롯데홈쇼핑은 고객 정보를 일괄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유출 가능성을 차단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8월 보안 솔루션 업체(홈넘버 메타)와 계약을 맺고 1년 넘게 보안택배 시스템을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개인정보보호법 전면 개정(시행은 그해 9월)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과징금 등 제재 수위가 높아진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까지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기업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상한이 위법 행위와 관련된 매출의 3%였지만 개정 이후 전체 매출의 3%로 강화됐다. 회사 관계자는 "보안택배 시스템이 적용되면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수천 곳의 협력사도 고객 개인 정보가 아닌 암호화한 홈넘버를 받게 된다"며 "보안이 강화된 배송 시스템이 다른 유통업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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