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비엔날레 맛보기
송천 스님 작품 ‘관음과 마리아’
8m 높이의 대형 그림 양쪽에
밝은 곳으로 이끄는 진리 상징
·
윤석남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과
쌀값 폭등 비판하는 인니 타링 파디의
저항적 에너지 강렬한 작품 등
36개국 78명 작품 349점 전시
2024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송천 스님의 ‘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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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각축장인 비엔날레와 출가한 불교 수행자인 스님의 관계는 멀어 보인다. 하지만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2024 부산비엔날레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 입구엔 8m 높이의 대형 성모마리아와 관음보살 그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파란 옷을 입은 성모마리아는 왼쪽에서, 붉은 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오른쪽에서 서로를 마주본다.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다.
“진리란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자 같은 존재입니다. 진리는 마리아이기도 하고 관음보살이기도 하죠.”
지난 16일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송천 스님이 말했다. 송천 스님은 불교미술 전문가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을 지냈으며, 17년간 전국 사찰에 흩어진 불화를 집대성했다. 관음보살은 13세기 고려불화 ‘물방울 관음’에서 따왔다. 일본 센소지사가 소장한 ‘수월관음도’인데, 물방울 모양의 광배가 아름답다.
마리아는 이탈리아 무라노섬의 산타 마리아 도나토 대성당의 그림을 참고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대비되는 마리아와 관음은 서로 닮은 모습으로 관람객을 자애롭고 부드러운 눈길로 내려다본다.
2024 부산비엔날레에 참가한 송천 스님이 성모마리아를 그린 그림 앞에 서 있다.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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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 스님의 ‘진리의 눈’.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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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벽엔 커다란 두 쌍의 눈인 ‘진리의 눈’이 그려져 있다. 분명 평면에 그려진 눈동자인데, 발걸음을 옮겨도 눈동자가 보는 이를 따라오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커다란 괘불을 보면 부처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착시현상인데, 눈동자를 동그랗게 그리지 않고 타원형으로 그려넣으면 그렇게 보이죠. 임진왜란 이후에 대형 괘불이 야외에 그려지면서 예배자의 눈을 맞추는 조각과 그림이 만들어졌어요. 진리의 눈은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이고, 늘 밝은 곳으로 인도해주는 관음보살이나 마리아와 같은 존재란 의미를 전하고 싶었어요.”
스님의 비엔날레 참여는 이례적이다. 지난해 여름, 2024 부산비엔날레의 두 예술감독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찾았다. 송천 스님이 그린 대형 벽화를 보고 두 사람의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졌다. “두 감독 입장에선 제가 해적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인 거죠. 제가 등장한 것 자체로 전시 주제에 부합한다고 느낀 것 같아요.”
난파된 해적선을 모티브로 한 정유진의 ‘망망대해로’가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돼 있다.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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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 스님의 작품 옆엔 정유진의 대형 난파선이 전시돼 있다. 뻥 뚫린 벽, 산산조각난 배의 잔해들이 강렬하다. 작품 ‘망망대해로’는 17세기 중앙아메리카로 향하다 난파된 해적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장은 난파된 배를 부숴 보트를 만들고, 민주적 규율에 따라 부하들에게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남을 것인지 투표에 부친다. 난파된 해적선이 민주적인 자치와 해방적 공간이 된 셈이다. 정유진은 “자본의 구조와 시스템 격차 속에서 어긋나고 불안정한 지금의 현실이 일시적 해방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던 해적선마저 난파 시켜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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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인도네시아의 현실 참여적 예술가 그룹 타링 파디의 ‘메메디 사와/허수아비’ 전시 모습. 쌀값 폭등에 저항하는 농민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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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윤석남과 인도네시아의 현실 참여적 예술가그룹 타링 파디의 작품은 서로 마주 보며 파워풀한 공간을 연출한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여성, 감옥에 갇혀 고문받는 여성, 독립군복을 입은 여성 등 독립운동가들 57명의 초상 하나하나를 마주하면 강렬하면서도 먹먹한 감동이 밀려온다. 타링 파디의 작품은 보다 직설적인 분노를 분출한다. 화난 농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그 앞에 쌀포대가 놓였다. 시대와 장소도 다르지만,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작품들이다.
부산현대미술관 2층에선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분신한 사건 이후 노동운동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과 차별이라는 문제를 다룬 홍진훤의 영상 ‘더블 슬릿’을 볼 수 있다. 18세기말~19세기 초 수만 명의 태평양 섬 주민들을 노예 삼아 호주로 이송한 배를 다룬 호주 남섬 이주민 4세대 작가 토고-브리스비의 ‘그것은 장소가 아니다’도 볼 수 있다.
해적과 불교라는 다소 낯선 조합은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저항과 대안적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만나고 교차한다. 송천 스님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성당과 사찰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불교적 깨달음과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비엔날레의 다른 작품들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방정아 작가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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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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