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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생명력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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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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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계기로 뉴라이트 논란이 재연되면서 ‘두 쪽 광복절’이 됐다. 한물간 것으로 여겨진 뉴라이트가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뉴라이트는 전향한 운동권 출신 등이 2000년대 중반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며 시작했다. 2004년 11월 신지호 대표의 자유주의연대, 2005년 1월 박효종·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교과서포럼 창립에 이어 2005년 11월 김진홍 목사가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출범시켰다. 2006년 4월에는 뉴라이트재단(이사장 안병직)이 창립됐다. 동아일보는 2004년 11월부터 석달간 뉴라이트 기획기사를 내보냈는데, 서구에 존재하던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이동관 당시 정치부장이 도입했다.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권과 손잡고 성장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신지호는 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신혜식 전 독립신문 대표는 “뉴라이트 운동은 결국 이명박 정권 만들기였다”고 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재평가, ‘1948년 건국절’ 주장 등을 펴면서 극우·친일 이미지를 강화했다. 교과서포럼이 2006년 내놓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시안은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하고 4·19 혁명은 학생운동이라고 표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했다가 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했다. 2019년 발간된 ‘반일 종족주의’(이영훈·이우연·김낙년)는 ‘뉴라이트=친일’ 인식을 키웠다.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득세했다. 김영호 전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은 현재 통일부 장관, 신지호 전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다. “내 생각은 뉴라이트로 바뀌었다”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다. 이밖에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등 역사 관련 기관에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포진했다.



정부 행보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을 비롯해,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의 대일 저자세, ‘일본 빠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등이 그러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했다. 이 정부에 ‘내가 뉴라이트요’라는 사람은 없지만, 뉴라이트 세력과 기조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황준범 논설위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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