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평해전서 남편 잃은 김한나씨 민생 외면 국회 향해 석 달째 호소
제2 연평해전의 영웅 고(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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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여의도의 국회 정문 앞에 회색 벙거지 모자를 쓴 김한나(50)씨가 나타났다. 한여름에도 긴팔 후드티와 긴바지를 입은 김씨는 제2연평해전의 영웅 고(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다. 강한 햇볕과 높은 습도 탓에 체감온도는 34도. 선크림과 뒤섞여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땀을 노란 손수건으로 계속 닦아낸 그는 ‘국회의원님들, 하루빨리 공무원인사법 만들어 나라와 국민 지키는 군인·경찰·소방관을 예우해 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2시간쯤 1인 시위를 했다.
김씨는 22대 국회가 개원한 6월 첫째 주부터 11주째 매주 월요일 국회에 나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회가 개원 두 달이 넘도록 각종 특검법과 탄핵안으로 정쟁을 벌이느라 보훈 관련 법안을 비롯한 비정쟁 법안이 뒷전으로 밀린 것을 알리려고 시위에 나선 것이다.
김씨가 입법을 촉구하고 나선 군인사법 개정안은 군인 등 순직 공무원들이 사후 진급 추서(追敍)된 계급에 맞게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 6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발의했다. 현행 군인사법에는 순직 군인이 사후 진급 추서되더라도 이에 맞춰 연금 등 급여를 새로 조정한다는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한 상사 유족도 생전 중사 계급에 맞춘 연금을 지급받고 있다. 한 상사는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 조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북한 경비정과 교전 중 전사했고, 2015년 상사로 진급 추서가 이뤄졌다.
지난 2018년 5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추모 바자회’에서 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가 기념품을 팔고 있다.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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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원은 21대 국회 때인 2022년 1월에도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 논의 과정에서 경찰·소방 등 일반 공무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못 넘고 21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됐다. 이에 22대 국회 들어 한 의원이 군인사법 개정안을 재발의하고, 같은 당 유용원 의원이 다른 공무원들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은 여전히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 행정안전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국방위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 발언으로 파행하면서 국방위 회의가 계속 밀렸고, 행안위에선 ‘25만원 지원법’ 등 쟁점 법안 강행 처리로 회의가 파행되면서 다른 법안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했다.
김씨가 입법을 촉구하는 법안들에는 소급 적용 조항이 없다. 이 법안들이 통과돼도 한 상사 유족은 진급 추서된 계급(상사)에 맞춰 인상된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1인 시위에 나선 건 “제복을 입고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경찰·소방관 등 공무원들에 대한 예우 강화 차원에서 반드시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지급에만 13조원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며 “차라리 그중 일부라도 좋으니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 한기호 의원 법안이 통과할 경우 연 9억5000만원의 예산이 더 들 것으로 국회는 추산했다.
지난 6월 27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에 위치한 평화공원에 설치된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부조 모습. 왼쪽부터 윤영하 소령, 한상국·조천형 상사, 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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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씨는 작년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도 1인 시위를 했다. 수술, 구직 활동 등으로 쉬다가 올해 3월 1인 시위를 재개한 그는 6월부터는 국회로 시위 장소를 옮겼다. 김씨는 “윤석열 대통령에겐 제 얘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한 것 같고, 이제 법을 만드는 의원들을 찾아왔다”며 “대통령실 앞은 나무 그늘이 있어 다소 견딜 만했는데 국회 앞은 정말 찜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복을 입는 영웅들을 위해 법안이 처리될 때까지 계속 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에서 순국한 故한상국 상사의 미망인 김한나씨가 지난 2023년 5월 25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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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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