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찾기 위한 30대 미혼 남녀 20명, 외신까지 ‘동행 취재’
지난 9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 시즌5 참가자들이 1:1 로테이션 차담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구동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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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성격이 발랄한 편이라서, ‘인생이 무료하다’ 싶으면 누가 저를 데려가 주세요.”
음력으로 칠월칠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 ‘나는 절로’ 시즌5 참가자인 직녀 3호(31)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공개 구애를 하자 폭소가 터졌다. 이날 낙산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30대 미혼 남녀 20명이 ‘짝’을 찾기 위해 모였다. 총 1510명이 지원해 남자는 70.1대 1, 여자는 77.3대 1의 역대급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열기 때문인지 일본 NHK방송 등 외신을 포함해 20개 언론사 30여 명의 취재진이 동행 취재에 나섰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지난 9일부터 1박 2일간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 낙산사’를 열었다. 2023년 11월 조계사에서 연 시즌1을 시작으로 벌써 5번째를 맞았다. ‘꿈이 이루어지는 성지’로 유명한 이곳의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작용한 탓인지 이틀 동안 총 6쌍의 연인이 탄생했다. 역대 최고의 커플 성사율이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모인 남녀 참가자들은 양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들은 버스에 오르기 전 제비뽑기 결과에 따라 좌석을 배정받았다.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세시풍속에 걸맞게 참가자들은 이름 대신 ‘견우 O호’ ‘직녀 O호’라는 별칭을 부여받았다. 버스에 오르자 한 담당자가 “안전벨트와 함께 사랑의 벨트를 매라”며 “옆자리 짝꿍과 최대한 친해지라”고 당부했다.
참가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반드시 짝을 만들어 돌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직녀 9호는 “올 때는 혼자 왔지만 돌아갈 때는 꼭 둘이 되어서 가겠다”고 했고, 견우 7호는 “친구들이 ‘이 기회를 살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저녁 공양 상대를 지목하기 위한 레크리에이션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구동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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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참가자들이 각각 청실 단주와 홍실 단주를 끼고 손을 맞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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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에 도착해 고운 빛깔의 청실 단주와 홍실 단주를 착용한 참가자들은 자기소개부터 의욕이 넘쳤다.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요가 강사 자격증도 있다” “푸릇푸릇한 것을 좋아해 수목원을 자주 간다”는 등 자신의 취미와 재능을 거리낌 없이 내세웠다. 참가자들의 직업도 서울시 행정직 공무원부터 기자, 경찰, 노무사 등으로 천차만별이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라는 견우 5호(36)는 “장점이 100가지 정도 되는데 두 가지를 먼저 말하면, 목소리가 좋고 호불호가 없어 편하게 연애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나머지 98가지 장점은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한 직녀 3호(31)는 “제 성격이 발랄한 편”이라며 “인생이 무료하다 싶으면 누가 저를 데려가달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후 법복으로 환복한 참가자들은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해 ‘짝 찾기’에 분주했다. 견우 10호가 용기 내 직녀 4호 이모(30)씨에게 “도반(道伴)과 함께하시겠습니까?”라고 세 차례 물었지만 모두 거절당하자 안타까움에 곳곳에서 탄식이 일기도 했다. 충남 당진에 산다는 견우 3호 정상원(35)씨는 경기 부천에 사는 직녀 5호에게 “장거리 연애도 가능하냐”고 물었고, 직녀는 “좋아하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형형색색의 한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참가자들은 낙산사 해수관음상으로 향했다. 이어 1:1 로테이션 차담과 야간 자유 데이트 일정이 밤 11시까지 강행군으로 이어졌으나, 짝을 찾겠다는 열의에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직녀 4호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견우 6호 김모(36)씨는 차담에서 직녀가 다른 견우와 마주 앉자 그녀를 걱정스레 쳐다보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우정이라도 챙겨가겠다는 마음으로 상대의 고민을 상담해줬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해가 저물고 야간 데이트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들은 문자로 최종 상대를 지목했다.
낙산사 해수관음상 인근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견우 6호와 직녀 4호.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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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야간에 진행된 1:1 로테이션 차담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구동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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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꿈을 이루어준다’는 낙산사의 명성 답게 총 6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견우 6호 김씨는 “(직녀 4호가) 자기소개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며 “가치관이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들은 ‘나는 절로’에 지원한 이유로 사찰이 주는 진정성을 꼽기도 했다. 직녀 10호는 “템플스테이를 여러 번 했는데 자연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절의 ‘추구미’가 저와 잘 맞았다”며 “여기에 지원한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다만 ‘나는 절로’의 기획 취지에 맞게 이들의 연애가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아직은 미지수라는 참가자들의 시각도 있었다. 직녀 9호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갖고 싶은 꿈이 있다”며 “정부에서 출산율을 높여보겠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육아 휴직 제도 등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고 말했다. 견우 3호 정씨는 “여성들이 출산으로인해 경력 단절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만남 이후의 단계에서 청년들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앞장서 걷어내겠다고 밝혔다. 9일 낙산사를 찾은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반려자를 만나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지만, 선택 과정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디딤돌을 놓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정부가 적극 노력할 테니 여러분은 만나고 인연을 쌓아달라”고 당부했다.
불교계에서도 저출생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재단 대표이사 묘장스님은 “불교는 언제나 사회와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지녀 왔다”며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와 함께 나아가겠다”고 했다. 조계종은 오는 10월에 40대 남녀를 대상으로 ‘나는 절로’ 시즌6을 준비하고 있고, 11월에는 백양사에서 시즌 7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 연말에는 짝을 찾지 못한 이들을 모아 ‘총동창회’도 열 계획이다.
최종 커플이 된 견우 8호 박모씨와 직녀 2호 정모씨.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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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나는 절로' 시즌5 회향식에서 참가자들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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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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