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루이 16세의 폐위
루이 16세. (출처: 알렉산더 로슬린, 회화(1782~178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Ded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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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92년 8월 8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폐위됐다. 그의 폐위는 단순히 한 군주의 몰락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절대왕권의 몰락과 민중 주권 시대의 개막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상징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를 넘어,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격동의 사건이었다. 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다. 절대왕권의 상징이었던 그는 혁명의 격랑 속에서 왕위를 잃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심각한 경제난과 사회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귀족과 성직자들의 특권은 일반 백성들의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이 16세가 파탄 난 재정 타개를 위해 170년 만에 처음으로 소집한 삼부회가 결렬된 직후인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었다.
혁명의 물결은 거세게 몰아쳤고, 루이 16세는 국민의 분노에 직면해 궁지에 몰렸다. 그는 혁명 정부의 개혁 요구를 거부하고 오스트리아와의 비밀 협상을 벌이는 등 반혁명적인 행동을 보였으며, 이는 혁명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루이 16세는 폐위된 후 탕플 감옥에 유폐됐다. 이는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국왕이 국민의 힘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난 사건이었다. 그는 혁명 정부로부터 국가반역죄로 기소된 후 국민공회 투표를 통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절대왕권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의 폐위와 처형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겨졌던 왕권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시대로 바뀌었음을 보여줬다. 프랑스 혁명은 근대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교두보가 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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