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티메프 피해 판매업체 긴급 간담회'에 피해자들이 몰려 일부 참석자가 문 밖에서 간담회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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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의 정산 지연으로 피해를 본 70여개업체의 대표와 관계자들은 저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한 참석자는 “금융감독원이나 중소벤처기업부도 ‘아무런 지침이 내려온 게 없다’고 한다”며“지원하려면 신속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내가 도박을 했나? 열심히 15년 동안 키워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생겼다”고 울분을 통하는 중소기업인도 있었다. 행사장에 참석한 업체들이 티메프에서 돌려받지 못한 대금은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이 넘었다.
이날 간담회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열렸다. 장 의원은 “지난달에 지역구에 잘 아는 기업인이 ‘35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고 연락해 오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며 “문제가 시급한데 정부가 빠르게 대응 못 하는 거 같아서 소통 창구라도 만들고자 나섰다”고 말했다. 장 의원과 피해 기업 대표들은 곧장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피해 사례 수집에 나섰다. 해당 대화방에는 현재 380명이 넘는 피해 업체 관계자들이 들어와 있다. 한 피해 업체 대표는 “정부나 정치권 관계자를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 말고도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과 만난 건 번번이 야당이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일 용산전자상가를 찾아 2시간 넘게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용산전자상가 업체들은 고가의 가전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해 미수금 규모가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 의원은 간담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직원들 전부 다 권고사직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세금 연체한 적 없는데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 같은 피해 업체 목소리를 전했다.
개혁신당은 티메프 사태로 사용이 중단된 해피머니 상품권 피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티메프에서 액면가의 7~10% 할인 가격으로 판매된 상품권의 대금 납부가 지연되면서 온·오프라인에선 해퍼머니 상품권 사용이 중단된 상황이다. 개혁신당은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해피머니 구매자들의 환불 대책 시위 현장을 찾았고, 지난 5일 허은아 대표가 피해자 간담회도 주관했다. 허 대표는 “해피머니를 주로 사용한 청소년과 2030의 피해에도 정치권이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티메프 사태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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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여당인 국민의힘의 움직임은 소극적이었다. 지난달 8일 위메프에서 첫 판매금 정산 지연이 발생한 뒤로 한 달이 흘렀으나, 여당 의원 주최의 피해자 간담회는 전무했다. 재발 방지 법안 역시 민주당 김남근·천준호, 조국혁신당 황운하·이해민 의원 등 야당에서만 발의했을 뿐, 여당발(發) 법안은 하나도 없었다.
국민의힘의 대응은 그나마 6일 열린 티메프 사태 관련 당정회의에서 ‘5000억원 유동성 지원’ 등 대책을 발표한 게 유일했다. 이마저도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정부 대책 발표 전 당정협의를 거치도록 요구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날 민주당 주최 피해업체 간담회장에서 만난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붐비는 회의장을 본 뒤 “우리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라며 쓴맛을 다셨다.
관련 상임위 소속 여당 의원들에게 왜 이런 행사를 기획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자, “따로 지침이 내려온 게 없었다” “필리버스터로 여력이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키지 않으니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민심에 반응하는 국민의힘을 만들겠다”는 일성과 함께 취임했지만, 아직 여당의 체질 개선까진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야당이 매일 폭주를 일삼고 국민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이런 걸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우리가 선거에서 진 정당이 맞나’ 싶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의석 수에서 밀린다고 늘 이슈 선점에 실패하는 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은 의석수에선 밀렸으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문제 제기와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탈원전 정책 비판 등 이슈를 주도했다. 자신을 ‘사이버 렉카(견인차)’에 빗대 ‘여의도 렉카’라고 지칭했던 하태경 전 의원은 “국회의원은 ‘지상 최대의 오지랖을 구현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의석 수가 적다고 의제 발굴에서도 끌려가라는 법은 없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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