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0 (금)

65년 만에 알게 된 아버지의 순직… 법원 “군 보상금 줘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서울행정법원 전경. /조선일보 DB


육군이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순직을 뒤늦게 인정한 사실을 유족에 알리지 않고 군 사망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A씨가 국군재정관리단을 상대로 낸 군인 사망보상금 지급 불가 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 5월 28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의 아버지는 육군 복무 중 1954년 8월 막사 신축 작업에 동원됐다가 산이 무너지는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는 약 1년 5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하반신 마비 등을 이유로 1956년 1월 숨졌다. 성인이 된 A씨는 1981년 국가에 유족급여 등을 문의했으나 육군은 “A씨 부친은 군 복무 중 병사했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이후 육군은 1997년 7월 A씨 아버지를 ‘순직자’로 다시 분류했지만, 유족들에게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

A씨는 아버지가 사망한지 65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의 순직 사실을 알게 됐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2021년 10월 A씨 아버지에 대해 “군 복무와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다”며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A씨는 이 결과를 토대로 이듬해 10월 군 사망보상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국군재정관리단은 “옛 군인사망급여규정에 따라 유족이 사망통지서를 받은 날(1956년)로부터 5년이 지나 시효의 완성으로 급여 청구권이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음을 인정하면서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재정관리단의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며 보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이는 국가의 배상 책임과 관련된 사건에서 국가의 잘못으로 청구인이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소멸시효 주장을 물리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망인이 군 복무 수행 중 사망했는데도 육군본부는 이를 ‘병사’로 규정해 유족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으며 뒤늦게 망인에 대한 순직 결정을 하고도 A씨에게 통지하지 않았다”며 “원고가 군인사망보상금은 물론 국가배상 등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만 3세였던 원고는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알기 어려웠고, 원고가 군인사망보상금 지급절차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보상금 청구를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원고의 어머니 역시 문맹이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혜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