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왼쪽)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두 사람은 이른바 ‘DJP 연합’ 정부 시절 각각 대통령, 총리를 맡아 권력을 분점했다. DJ의 민주당은 JP의 자민련이 의석수 부족으로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이자 ‘의원 꿔주기’라는 편법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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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은 왜 그런 무리수를 써 가면서까지 교섭단체 지위에 집착했을까. 한마디로 우리 국회가 철저히 교섭단체들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원회의 각종 의사일정은 교섭단체 대표 또는 간사들 간의 조율을 거쳐 결정된다. 교섭단체가 아닌 군소 정당은 의사일정 협의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국고보조금 지급도 교섭단체가 우선이다. 일단 원내에 의석이 있으면 군소 정당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긴 하나, 그 액수는 교섭단체인 정당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물론 의석을 100석 넘게 가진 정당과 10석에도 못 미치는 정당을 똑같이 대우할 순 없는 노릇이다. 총선 때마다 정당들이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 경합하는 것도 국회에서 그만큼 큰 발언권을 얻고 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교섭단체 우대 관행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의석수와 상관없이 모든 정당에 균등한 기회가 보장된다는 의미다. 굳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데, 이는 국회의원의 관료화와 정치의 퇴보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 국회는 1948년 개원 이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석 이상’으로 삼는 관행을 지켜왔다. 그러다가 1963년 11월 10석으로 뚝 떨어졌다.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시절 200명도 훨씬 넘었던 국회의원 정원이 제3공화국이 출범한 1963년 6대 국회를 기점으로 175명까지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3년 9대 국회 들어서 20석으로 원위치했다. 의원 정원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19명으로 늘어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후 의원 정원이 300명에 도달한 현재까지도 20석 이상이라는 요건이 5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혹자는 1972년 당시 박정희정부의 유신 선포 후 정권에 비판적인 군소 정당들의 활동을 억제하고자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일부러 까다롭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고정관념에 입각한 것일 뿐 객관적 근거로 뒷받침되지는 않는다. 기존에 20석 이상이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10석으로 줄어든 것도 박정희가 이미 절대 권력을 잡고 있던 1963년에 벌어진 일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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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행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석에서 10석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당은 4월 총선 당시 12석을 얻는 데 그쳐 교섭단체 요건에 한참 모자란다. 조 대표는 “현재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 운영 참여가 원천 봉쇄돼 있다”며 “50여년 전 군사정권 시절 소수 정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석으로 높인 탓”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회의원 정원이 늘면서 그에 비례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의원 수도 증가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군사정권과 거리가 먼 이승만정부와 2공화국 의원내각제 정부 때에도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20석 이상이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조국당은 조 대표 본인은 물론 의원 상당수가 각종 비리 혐의로 법원 재판이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못지않게 ‘사법 리스크’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교섭단체가 되면 그 지위를 악용해 당 대표 등의 ‘방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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