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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반도체 석학의 일침… “삼성, 1등 관습서 벗어나지 못하면 HBM 전철 밟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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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유회준 반도체공학회장./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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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시대에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도 AI 가속기 고객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신경망처리장치(NPU)에 맞춤형으로 제작돼 제공될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표준만을 고집해 납품하던 과거 1등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뺏긴 전철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유회준 반도체공학회장(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은 지난 16일 부산 서구 윈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반도체공학회 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 학회장은 ‘세계 반도체 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최다 논문 발표자로 선정된 반도체 학계 권위자다. 지난 1994년 256메가SD램 개발, 1999년 휴대전화용 게임 칩 개발, 2008년 의복형 웨어러블 컴퓨터 개발이 그의 손을 거친 세계 최초의 산물이다.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AI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다.

유 학회장은 AI 시대는 이제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라며, 시장이 성장하면서 HBM뿐만 아니라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제품군도 고객사에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커스텀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 응용처에 따라 GPU와 NPU의 형태가 다 다르다”며 “이를 설계하는 고객사에서 최적화된 저전력 D램, 3D(차원) D램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는 고객사 요청에 맞춰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업계 1위를 유지하며 표준에 맞는 메모리를 찍어내는 사업 형태를 빠르게 탈피하지 못하면 AI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유 학회장은 온디바이스(내장형) AI 시장이 열리면서 엔비디아의 독주도 막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인텔이 Arm 때문에 시장 지배력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모바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Arm이 점유율을 높인 것처럼 엔비디아가 취약한 분야로 평가되는 엣지 디바이스 시장에서 현재 퀄컴이 약진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지금 같은 장악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장을 선도할 신제품을 우리 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정부 차원의 치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 학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가 1등을 차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각으로 봤을 때는 프로세서 기업의 설계·필요에 맞춰 메모리를 찍어주는 기업에 불과할 수 있다”며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 시장을 선도할 제품과 이를 뒷받침할 정부 지원이 합쳐져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유 학회장과의 일문일답.

HBM을 이을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은.

“HBM의 성장세를 지켜볼 때 AI 시대는 ‘커스텀 메모리’가 대세로 떠오를 것이라고 본다. 현재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수요가 크지만,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온디바이스 AI 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세서가 탑재될 것이다. HBM보다 최적화돼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각종 메모리가 필요한 것이다. HBM이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GPU와 궁합이 뛰어나 수요가 폭증했지만, 차세대 AI 솔루션에는 HBM 외에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메모리가 요구될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CPU, GPU 등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장치)가 중요한 솔루션이 될 것 같다. 엔비디아의 엔브이링크가 시장을 선점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인텔이나 AMD 등 엔비디아의 경쟁사가 CXL을 대신해 엔비디아의 솔루션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반도체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중국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성장 속도가 놀랍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기술이 내재화될 수 있도록 도운 것 같다. 반도체 제조나 회로 설계, 그리고 오류 검증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처리·분석하는 EDA 툴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공정을 제공한다. 중국 고객사 매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차라리 느슨한 규제로 기술 의존도를 높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양산 기술은 아직 국내 기업과 기술 격차가 크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중국이 앞선 것 같다.”

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보유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1위이지만, 인텔이나 AMD 같은 프로세서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설계한 틀 안에서 메모리를 양산해 주는 수준이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만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더한 프로세싱인메모리(PIM)도 한 가지 예시가 될 수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서 프로세서 고객사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개발을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프로세서 기업 입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도 미흡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정부 관료들이 직접 반도체 산업 현장을 뛰어다닌다. 영업도 하고, 네트워크도 구축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은 치밀하게 준비한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에 이런 일을 맡기기만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AI 반도체 시장을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데.

“엔비디아는 지금이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시장 장악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온디바이스 AI 시장이 개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엔비디아 GPU는 사실 AI용이 아니라 게임용이다. 전력 대비 성능 효율 등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기기에서 구동하는 데 단점이 있다. 퀄컴 등 경쟁사가 관련 시장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스러울 것이다.

과거 인텔 사례를 보면, 인텔이 Arm으로 인해 지배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 못했다. 모바일 시장이 성장하면서 Arm이 선전했고 이제는 PC용 CPU 아키텍처도 넘보고 있다.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AI 시장이 데이터센터에서 엣지 디바이스로 확대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진행되면서 엔비디아 독주 체제도 깨질 것이라고 본다.”

부산=전병수 기자(outstandi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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