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성소수자 커플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 '모든패밀리' 포스터. 웨이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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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면 나는 ‘안 한다’ 대신 ‘못 한다’고 답한다. 친구가 ‘왜?’ 하고 물으면 내가 처한 상황들을 설명하며 결혼 후의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말을 더하면 그제야 친구는 ‘결혼을 못 한다’는 내 대답이 의도된 농담임을 알아차린다. 나의 이런 농담은 성소수자들에겐 농담이 아니다. 나의 ‘못 한다’는 그들의 ‘못 한다’와 다른 층위에 있다.
지난달 28일 방영을 시작한 웨이브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 '모든패밀리'는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출산한 레즈비언 김규진·김세연 부부, 그리고 10년째 동거를 하는 게이 킴·백팩 커플의 삶을 바라보는 콘텐츠다. ‘만삭으로 산부인과를 가는 여자,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남자’. 이 평범한 문장은 두 커플을 통해 ‘여자’가 ‘레즈비언’으로, ‘남자’가 ‘게이’로 바뀐다. 고정 관념을 부수는 두 커플의 일상은 '모든패밀리'에서 세상이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지 질문하듯 그려진다.
성지향성 다른 게스트.. 양극단의 시선
이 질문을 먼저 받는 건 스튜디오에 앉은 패널들이다. '모든패밀리'는 연예인만 출연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과 패널 구성이 다르다. 성직자, 의사, 성소수자 부모연대, 4인 가족, 외국인, LGBT(Lesbian·Gay·Bisexual·Transgender) 등 성소수자 의제에 얽혀 있는 이들로 구성돼 있다. 세대, 인종, 성별, 직업, 성지향성, 성정체성이 모두 다른 그들의 반응은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경험하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김규진씨가 커밍아웃 과정을 말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4인 가족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우리가 커밍아웃을 하면 어떨 것 같아?” 레즈비언과 게이의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적에서 파야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같은 영상을 보던 성소수자 부모연대의 비비안씨와 조정일씨는 게이인 자녀가 커밍아웃 과정을 통해 느꼈을 불안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함을 표현한다. 성소수자 자녀를 향한 굳은 긴장감과 부드러운 유대감은 이렇게 대비돼 시선의 양극단을 느끼게 한다.
서울 퀴어 퍼레이드 참석자들이 지난달 서울 중구 종각역 앞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도심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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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으로 취합할 문제가 아니다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동성애 혐오 세력들이 ‘건강한 대한민국’과 ‘예수님의 사랑’을 앞세워 행렬의 일행을 무섭게 협박하는 장면이 나오자 시종일관 유쾌했던 성소수자 부모연대도, 동성부부의 삶이 거북하다던 아버지도 모두 말을 잃는다. 레즈비언의 출산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는 산부인과 의사와 동성부부라는 개념을 제도에 도입하기엔 어렵다던 비뇨기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모든패밀리'는 성소수자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의 어떤 관점과 행동이 소수자의 일상을 위협하는 명백한 차별이자 폭력임을 시청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한다. 아울러 성소수자가 가족을 만들 권리는 사회 구성원의 찬·반으로 취합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보여준다.
'모든패밀리'엔 LGBT와 그 지지자들이 세상과 싸우며 만든 농담이 쉴 새 없이 흐른다. ‘부치(사회적 남성성이 부각된 레즈비언을 일컫는 용어)’ 역할에 가까운데 어떻게 출산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김규진씨는 “내 여자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같은 장면을 본 게이 유튜버 김똘똘씨도 ‘해마도 수컷이 애를 낳잖아!”라고 거든다. 그들의 말에 웃고 나면 코앞에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이 농담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의 농담을 듣고 그 농담의 유래를 찾을 때 모든 형태의 가족과 삶이 존중받는 미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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