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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배기가 10대되면 실명"…희귀병에 울던 엄마, 희망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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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의료 기사가 지난 28일 분자진단검사실에서 전장엑솜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 샘플을 준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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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을 앞둔 영호(가명)는 2021년 8월 신생아 선별검사에서 귀에 이상이 감지됐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사를 했더니 어셔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진단이 나왔다. 영호는 웅성거리는 소리나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감각신경성 난청'을 안고 태어났다. 보청기를 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이 병은 자라면서 악화한다. 더 무서운 건 10대에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실명까지 이어진다. 영호 엄마 A(40)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집안에 이런 병이 없는데, 너무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러던 2022년 어느 날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소아이비인후과 이상연 교수,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조동현 교수의 연구가 한 줄기 빛이었다. 이 교수는 영호와 A씨 부부의 혈액과 피부조직으로 전장 유전체 분석(모든 유전 검사)을 했고 여기서 두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중 하나가 맞춤형 RNA 치료제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치료제는 이 교수, 조 교수, 카이스트 김진국 교수가 함께 개발 중이다.

A씨는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질병 정보를 얻거나 상의할 데가 없어 답답했는데 이 교수가 수시로 검사 결과, 진행 과정 등을 설명해줘서 좋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에 치료제 얘기를 듣고 긴가민가 했다. 앞으로 (개발까지) 몇 년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귀가 더 나빠지지 않고 눈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시대를 잘 타고 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상연 교수의 연구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2021년 5월 소아암·희귀병 극복에 써 달라고 서울대병원에 3000억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이 교수팀은 USH2A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어셔증후군Ⅱ 환자 16명의 전장 엑솜 및 유전체를 분석했다. 여기서 18개의 변이를 확인했고, 이 중 2개는 맞춤형 RNA 치료제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영호의 변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교수팀은 이와 별개로 단백질 합성이 중간에 멈춘 '절단형 변이' 유무에 따라 질병 상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게 있으면 난청이 더 일찍 생기고 청력이 더 안 좋았다. 이 변이가 두 개이면 더욱 나빴다. USH2A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의 망막 손상은 16세를 지나 나타났고, 절단형 변이가 있으면 병의 진행이 빠르고 상태가 더 심각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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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이비인후과 교수가 어셔증후군 유전체 분석 결과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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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같은 유전자라도 돌연변이 부위가 인종·국가마다 다른데, 다만 이번 연구 결과가 중국·일본과는 비슷하다"고 말한다. 한·중·일이 희귀병 극복에 연대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 어셔증후군 환자에게 가장 흔한 돌연변이를 겨냥한 유전자 가위 치료 모델을 만들었고 곧 동물실험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 교수는 "이건희 기부금이 없었다면 개인 연구자 선에서 정밀의학 연구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여러 과가 협력해서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성과가 쌓이면 세계적 수준의 유전성 난청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100여명 환자의 유전자 검사비(건당 100만~300만원)도 기부금에서 나왔다. 영호 엄마 A씨는 "이 교수가 기부금 프로젝트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려줬다. 여기에 들지 않았으면 지금의 희망은 없다. 이 전 회장과 의료진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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