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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8 (목)

[만물상] 韓에선 오물, 北에선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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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9일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한 빌라 옥상에 떨어진 오물풍선을 소방대원이 치우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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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파지, 꽁초, 분뇨, 건전지, 라이터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자 탈북민들은 “저것은 북한에선 모두 보물”이라고 한다. 그분들에 따르면 북한은 종이가 ‘귀하신 몸’이다. 종이가 없어 교과서도 물려가며 쓴다. 재활용 공책은 온통 누런색이다. 물려받은 교과서가 망가져 재활용 공책에 옮겨 적어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화장실에선 종이 대신 옥수수 껍질을 쓴다. 휴지는 특권층 전유물이다. 학생들은 파지를 모아 바쳐야 한다. 초등생이 연간 50kg을 내야 한다. 목표량을 채우려 종이는 보이는 대로 줍는다. 중국 상인이 종이 박스를 버리면 서로 차지하려 다툰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대신 돈을 바쳐야 하니 파지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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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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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도 보기 힘들다. 필터 담배는 부유층이나 필 수 있는데 그 옆에는 항상 그 꽁초를 주우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필터를 모아 빨면 솜이 되고 베개나 이불속으로 쓴다. 건전지는 더 귀하다. 폐건전지는 버리지 않고 재충전해서 쓴다. 라이터와 볼펜 심도 재활용한다. 비료가 없는 북한은 퇴비를 쓴다. 분뇨도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분뇨 쟁탈전 탓에 분뇨 도둑을 막으려 변소에 자물쇠를 채운다.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한 북한은 ‘버리면 오물, 쓰면 보물’이란 구호를 걸고 폐지나 폐비닐, 폐병, 깨진 유리 등을 모두 다시 쓴다. 폐타이어 안에 짚단을 넣어 쓰고 자투리 천은 장갑이 된다. 아버지 속옷이 아이 운동복이 돼 10년도 간다. 누에고치로 명주실을 생산하는 공장에선 폐수로 단백질 식품과 수액, 비료를 만든다.

▶북 당국은 폐기물 수집함과 쓰레기통을 ‘보물함’이라 부르고, 재활용품은 ‘오물로 만든 보물’이라고 한다. 한 번 쓴 자원은 끝까지 재활용해 쓰라는 ‘재자원화법’도 만들었다. ‘70대 노파가 파지와 폐비닐 등을 하루 500kg 이상 모아 왔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오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리는 ‘내가 찾은 보물’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그런 북한이 6·25 하루 전날 오물 풍선을 또다시 남으로 날려 보냈다. 지난달 이후 1600개가 넘는다. 풍선 안엔 파지와 폐비닐, 자투리 천, 담배꽁초, 폐건전지, 퇴비 등이 담겨 있었다. 북한 주민들에겐 ‘보물’ 취급 받는 귀한 것들이다. 북 당국은 급하게 풍선을 날리려고 주민들에게 이 ‘보물’을 바치라고 닦달했을 것이다. 김여정이 오물 풍선을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그걸 모으느라 고생했을 북 주민들이 안쓰럽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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