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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5 (월)

시계가 사치품이던 시절…점심시간 알려준 대포의 마지막 모습 [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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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의 백년사진 No. 66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커다란 대포 사진입니다. 1924년 6월 20일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입니다.

서울 사람들에게 낮 12시라는 것을 알려주었던 오포(午砲)라는 것이었다는데요. 사연을 한번 보겠습니다.
동아일보

1924년 6월 20일자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午砲의殞命日(오포의 운명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30만 부민에게 정오(正午)를 보(報)하던 용산 효창원(孝昌園)안에 있는 오포(午砲)는 경비절약관계로 오늘로써 마지막 날을 짓게 되고 내일 21일부터는 그 대신으로 시보기(時報機)라는 것을 남대문통 소방대안 철골망루(鐵骨望樓)에 만들어 놓고 신호소리를 내게 되었는데, 신호방법은 정오보다 구십초(九十秒)가 이르게 신호소리를 시작하여 정오에 그칠 터이므로 말고동 소리가 끝나는 순간이 즉 정오라더라. (사진은오포)


● 매일 낮 12시에 서울에서 울렸던 대포 소리

시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던 시계를 비용 문제로 철거하고 내일부터 뭔가 기계적인 시계를 설치한다는 소식입니다. 1910년대부터 십 년 넘게 매일 낮 12시면 서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포(砲)를 쏘았었다고 합니다. 용산 효창원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운영에 돈이 꽤 들어갔는지 이제 철거하고 내일부터 ‘시보기’라는 것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서울 남대문 근처 소방서에 높은 철골 망루를 세우고 거기에 시보기를 올려 놓는다는 얘기인데 대형 스피커 같은 장치를 시계와 연결해서 12시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12시보다 90초 즉 1분 30초 전부터 말고동 소리를 길게 울리는 방식입니다.

● 새로운 알람 시계의 등장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아무래도 여론의 행방이 중요한데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후속 기사를 좀 찾아 보았습니다. 새로운 시보기가 설치된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1924년 6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시보기가 설치된 남대문 부근에만 들리고 멀리 있는 곳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에러가 발생해서 시민들의 비난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납품 업체에 AS를 요청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時報機의非難 - 소리가 들리지 않아

경성부청에서는 오포(午砲)를 폐지하고 그 대신으로 이달 21일부터 시보기(時報機)를 울려서 시민(市民)에게 오정을 알려 준다고 하엿으나 어찌된 일이지 시보기가 있는 남대문통 일대를 제외하고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다 하여 비난이 자못 많다 하는데 경성부 당국에서는 졸지에 낭패한 빛을 가지고 시보기를 사는 곳에 방금 그 이유를 조회하였으므로 그 회담을 기다려 다시 개량방법을 강구할 터이다.


그 이후 10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재밌는 기사가 있어 인용해 봅니다.

時報機(시보기)는七時에 - 날이짤너진고로

정오와 오전 6시에 울던 시보기는 요사이 날이 짧아졌음으로 오전 6시를 오전 7시로 고쳐 7시에 울게 되였다더라.


지금으로 하면 서머타임제라고 해야 할까요? 새벽 6시에 시민들을 일터로 나가라고 깨우던 시계가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한 시간 늦워 7시에 울리도록 정책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새로 설치된 시보기는 점심 시간을 알리는 낮 12시 뿐만 아니라 조금 이른 기상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전 6시에도 울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서울 시민들의 기상 시간과 점심 시간을 알려주던 대포와 그 뒤를 이은 시보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특별한 점이 보이셨나요? 댓글을 통해 알려주세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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