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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스님 뜻 이어 주인국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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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3일 대법회에서 법문하는 도문 스님. 용성 스님의 손상좌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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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자신의 해탈을 위해 용맹정진하셨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독립운동가가 되셨다.”

지리산 자락인 전북 장수의 죽림정사에서 13일 독립운동가 백용성 스님(1864~1940)의 유훈을 따르는 ‘한반도 평화와 국민 통합을 기원하는 만인대법회’가 열렸다. 이날 대법회에는 무려 1만 명의 대중이 모였다. 정토회 회원들을 비롯해 용성 스님의 유훈에 공감하는 이들이었다. 정세균 전 총리와 주호영 의원 등 정치인들과 소설가 김홍신, 가수 노영심 등 문화계 인사도 많이 보였다.

특설 무대 양쪽에는 플래카드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강대국의 종속국이 되지 말고 주인국이 되어라’ ‘대한정국의 주인이 되어 세계평화를 선도하라.’ 일제 치하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용성 스님의 가르침이다.

용성 스님의 손상좌인 도문 스님(죽림정사 조실)은 법상에 올라서 스승의 깨달음을 법어로 풀었다.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은 “용성 조사께서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한 일은 독립운동사에 대서특필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도문 스님의 상좌인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은 이웃 종교를 비롯한 각계 대표와 함께 ‘만인평화선언’을 했다. “남은 북으로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을 날리고, 북은 남으로 오물 풍선을 보낸다. 힘에 의한 평화만 고집하면 전쟁의 위기가 높아진다. 남북 대화의 재개가 필요하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북한을 향해서도 “하루빨리 핵을 동결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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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감시 대상자였던 용성 스님. 백상규는 그의 속명이다. [사진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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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 스님은 천도교 손병희 교주와 함께 3·1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2개월 옥고도 치렀다. 출옥 후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용성 스님은 만주 북간도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중국 연길에서 수백만 평 규모의 땅을 매입해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로 삼았다. 직접 삼귀의 오계를 주었던 윤봉길을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낸 이도 용성 스님이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의거에서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 즉사했다. 당시 국민당 총통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칭송했다.

도문 스님은 “이 일을 계기로 장제스가 조선에 관심을 갖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며 “용성 스님은 1938년 장제스를 만나 조중연합군 창설을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용성 스님이 장제스와 마오쩌둥을 만나 조중연합군 창설을 논의할 때 통역을 한 사람이 임철호다. 전라도 만석꾼 집안의 아들인 임철호는 도문 스님의 부친이다. 그러나 일제가 심어놓은 밀정의 배신으로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조직은 일망타진됐다.

조직이 괴멸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용성 스님은 “나의 할 바를, 도리는 다 마쳤도다. 기묘년(己卯年, 1939년)에 절단이 나버렸구나. 그러나 이 절단 난 씨앗이, 다가오는 다음 기묘년에는 우리나라 ‘대한정국’ 800년 국운을 맞이하는 해가 될 것이다”라고 유훈을 남겼다. 이듬해 용성 스님은 입적했다.

당시 용성 스님은 60년 후에 대한민국이 독립은 물론이고 아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 내다봤고, 다시 25년 후에는 대한민국의 800년 대운이 열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법륜 스님은 “올해가 바로 그 해다. 우리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말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만인대법회의 의미를 짚었다.

장수=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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